2009년 5월 8일 금요일

아무러크소니 한말씀

성자 가르침에대한 느낀 평론아무러크소니 께서 제중생(諸衆生)을 가르켜 한말씀 하시대 제양상이 꼭 나쁜 것으로만 귀결짓는 것은 아니니 釋氏(석씨)의 말을 전부 신용할 것은 못된다 하심이라. 諸行無常(제행무상)이 하필 고름덩어리로만 귀결짓겠는가? 이런 말씀이니 성인의 말씀을 헐뜯고 비방해서가 아니라 사실이 그렇 찮는가? 이런 말씀이다. 그 고름 덩어리 또한 諸行無常(제행무상)이니 꽃도 될 수 있고 맛있는 설탕 꿀도 될 수있고 아름다운 보옥도 될 수 있고 美聲(미성) 음률가락도 될 수 있다는 뜻이니 하필 흉칙한 것으로 만 귀결짓는 말을 해서 중생의 마음을 근심되게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그냥 현실생활에 충실할 수 있게 가르치면 어떨까? 즉 너에 지금 삶을 영위함을 열심히 하라는 뜻의 것을 갖고 사람들을 제도 한다면 얼마나 좋을 까이다 중생의 만병은 마음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인데 그 마음이란 것을 잘 다스려 편안하게 함은 어떨까? 하필 고통이나 흉측한 모양이나 이런걸 갖고 마음을 자극시켜 病傷[병상]하게 하거나 모든 생김이 내라함이 아니란 것만 갖고 가르치려 들 필요는 없다할 것이다. 혹 나의 말에 반대시각을 갖는 자가 있어, 되 비평해서 너가 뭐란 것을 인식하게 하는 감관이 구별해서 그런 구별을 해놓는다 할는지 모르지만 그렇담 그런 구별에 말씀은 누가 먼저 어지럽게 말했는가? 이런 뜻이다 나에 말씀은 그런 요지다. 즉 장구 허리만 갖고 논할게 아니라 장구 전체를 들어 논해야 된다할 것이다. 현실의 쾌락을 영위하는 것을 갖고 나쁜 시각으로만 관찰한다면 고름덩어리가 춤춘다할 것이고 시기나 질투를 해서 남에 삶을 배가 뒤틀려 하는 꼴 밖에 되지 않는다 할 것이니 윤회 와 업보 논리 또한 남을 濟度(제도)하기에 앞서 못된 象(상)을 생각으로 그려 衆生(중생)을 癡愚(치우)하게 몰아 엄포 공갈하는 말 밖에 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이를테면 저 사람이 차에 치여 죽었다 한다면 과거 업보가 있어 차에 치여 죽었다 할 것이니 소위 그전에 자기 몸이 차였었는데 현실적인 차가 과거 사람에 몸이었던 걸 그 차가 갈려 죽이는 바람에 그 현상이 뒤바뀌어 나타난 현상이 지금에 현상이라는 것이라면 그 번복 현상일 뿐 인 것이요 무슨 죄의식 따위를 거기다가 결부 시켜 말할 필요는 없다 할 것이며. 또 그 전생에 일은 무어 며 또 그전생에 일은 무어 란 말인가의 의문점에 도달한다 할 것이다. 설령 갑이 乙을 害(해)하고 을이 丙을 害(해)하고 병이 甲을 害(해)하는 등 체바퀴 도는 먹이사슬 논리라도 그 이치는 마찬가지라 할 것이니 그 하나의 응보적 형태가 그렇게 지어져 보였을 뿐이라 할 것이다 어떠한 형태이던 그 응보적 형태이라면 그 응보적 형태일 것이니 그 이친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 시간을 거꾸로 돌리는 듯한 응보적 형태 또한 그렇다할 것이니 즉 미리 어떤 사건을 겪는 것은 래세에 어떻게 하기 위해서 라기 라거나 어떻게 될 것이라거나 그 뜻은 時間性向의 順流하면서 짓는 현상과 다를봐 없다 할 것이니 이를테면 乙의事 현상이 甲의事 현상보다 먼저 있었다해도 그 응보적 이치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즉 머리부터 먼저 움직이는게 아니라 그 꼬리부터 먼저 움직일수 도 있다는 것이니 어떠한 일 이 아직 일어나기도 전에 그 결실이 먼저 나타날 수 있고 그 징후도 보일수도 있는 것이며 내가 그미리 그 댓가를 치룬다는 말도 있지 않는가? 이런 뜻임 또한 응보적 입장에서 배은망덕이란 뜻도 있는데 그것이 배은망덕이 아니라 입장의 바꿔놓기가 전세 에 있었다면 이미 그것은 배은망덕의 의미가 소멸되었다는 뜻이다 또 후세에 있을 것을 지금대변 하는 것이라도 그 이친 마찬가지가 된다는 것이다 즉 내가 저자에게 보살핌을 받아 극한상황 죽을 처지에서 살아났는데 그 은인이 은인이라 해서 자기의 곤란한 처지가 당도했는데도 알면서도 모르는체 돌봐주지 않는다고 내게 헐뜯을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이미 그것은 입장 바꿔놓기로 내가 전세에 베풀었던 것을 도로 되받아 오는 것인 줄 굳이 누가 있어 아니라고 확연히 증명할 것인가 이 말이다. 또 이런 상황의 전개는 못된 귀신이 제공과를 뻐기고 제 포로 코자 구걸하듯 굽힐 것을 강요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되고 회유정책에다 그래도 안되니까 이제는 배은망덕의 상을 그려 그 구렁텅이로 올가미 씌우듯 몰고 갈려고 하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귀신이 귀신을 희롱하는 것일 뿐 참사람은 어찌하지 못할 것이다 일체가 다 귀신이 짓는 빠트리는 함정이라면 함정이요 덫이라면 덫일 것이니 그 우그려 짓는 시간성향의 모습이 그렇다는 데야 어찌해볼 도리 있겠는가 이런 뜻이다 너가 크다는 것이(크려는 것이) 아니꼬우니 제 손아귀에 넣듯 하고 一躍(일약)하듯 올라서서 여보란 듯 베풀 기회를 주지 않겠다는데야 천상간에 구걸에 모습으로 살 수 밖에 더 있겠는가 이런 나에 말씀이다 내가 크면 저-귀신이 종 될 [까바 두려워서 그래 방훼 할수도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즉 眼下無人(안하무인)처럼 나대 내가 저 해를 화살로 떨어트려 너 해보다 높다는 것을 주지시키려드는 그 옛날의  (예)임금처럼 말이다 말꼬릴 돌려 그래서 생색내는 은덕이 원수 노릇 할까봐서 그런지는 몰라도 보감에 말하길 薄施厚望者(박시후망자)는 不報(불보)하고 貴而忘賤者(귀이망천자)는 不久(불구)라 했고 釋氏(석씨)는 갈러 指目하는 것을 비운다는 뜻(*비워 재킨다)일수도 있는 空的[공적]인 입장에서 역할 담당을 잘해낸 것을 解脫成佛[해탈성불]로 말하게 됨인 것이다 즉 내라는 존재의식을 버린 속에서 제 위치를 철저히 固守(고수)한 것을 菩薩(보살)이라 하고 능력 닿는데 까지 제 性態[성태]의 眞價(진가)를 보여줌을 말함이다. 그렇다고 불분명한 논리의 前後(전후)世(세)를 들춰서 배은망덕이란 뜻을 미화하고자 하는 뜻은 아니다 다만 은덕을 받은 자가 자존심만 강해 그 도움 받은걸 치욕으로 여겨 비굴한 의식에 사로 잡혀 갚지 못해 캥겨서 하는 말만 아니요 저쪽의 치사한 유세가 이쪽의 약점 노릇하는 게 되어 마음에 부담을 느낄까봐 노파심에서 소멸시키는 변재 방법을 가르켜 주는 것일 뿐이다 그것은 실리를 얻기 위한 한 수단의 모습 지혜로도 될 수 있는 것이지 즉 나는 저 잘나게 나대는 자를 슬기를 써서 그 가진 것을 내게 내놓게 해 나도 가진 입장이 되 보겠다는 한술수의 방편으로도 그렇게 지어 보일 수도 있다는 것이니 와신상담의 故事를 잘 새겨본다 면 이말이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질 잘 알것이다 세상에 구걸하고 실리를 취하는 모습도 가지가지 여러 형태이라 할 것이니 하필이면 남루한 옷에 깡통을 들어야만 구걸하는 모습이라 할 것인가? 이 말이다 또 말머릴 돌려 설령 그 응보적 형태가 현실감각으로 더 환희 스런 것으로 나타나면 어떻게 辨在(변재) 할 것인가? 즉 철천지 불공대천지 원수가 그 應報(응보)가 사지를 찣는 저주가 아니고 갖은 좋다하는 성향에 것을 갖고 應報(응보)된다면 그것이 어찌 그의 應報(응보)가 아니라고 무엇을 갖고 확증 할 것인가? 그래서 옛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배터져 죽으라는 뜻이 아니라 忍辱[인욕] 聖者(성자)께서 너 잘되 여한 없는 게 내 바라는바 본모습이라 하고 念願(염원)자의 행위에 感銘(감명)받아 참 聖者(성자)의 성스런 자태를 나타내는 모습이라면 어떨 것인가?. 이런 뜻이다 그렇다고 또 철천지 원수라고 하게끔 하는 행동을 미화코자하는 말은 아니다 다만 이렇게도 조명 해볼 수도 있다는 뜻이다 글을 쓰다보니 줄기 말은 어데로 가고 가지(枝梧)말만 무성하게 되어서 본뜻을 흐리게 하고 있다.여기서 가지[枝葉的(지엽적)인]말을 줄일까한다.)}
* 삼라만상이 모두 해탈 상이고 육감으로 감식되는것이 모두 해탈 상 이다 테엽을 꺼구로 돌리면 만개한 꽃 의 시절 이런것 이 해탈 상임을 알것이다 자신의 염원상이나 모든이가 갈망하는것이 성취되는 현상등은 모두 좋은 해탈상이라 할 것이다 그런것을 사시적인 관점으로 노아선 해탈상 아닌것 으로 관조하는것 역시 그 필요에 의해선 그렇게 하는것 인지라 너무 한가지에 탐익 매료된다면 그 허덕이는 고해의늪의 현상이 인다는 것인지라 그래서 그런것을 경계하라는 의미에서도 성인의 좋은신 말씀 가르침이 존재하게 되는 것이라 성인의 가르침을 갖고선 이렇궁 저렇궁 너무 야유적이거나 조소적으로 비아냥 거리는것 역시 바른자 세는 못된다 할 것이다 내 마음이 고요하다면 글도 이렇게 편안하게 격동치지 않고선 잔잔하게 흘러 감을 알것이다
..또 어떤 종족이 몰살을 받게 된 원인은 전세에 물고기들을 씨도 않남게 약을 풀어 몰살시켜 잡아먹는 바람에 그렇게 됬다 한다면 그 물고기는 사람의 사욕을 채우는데 동원되는 견물생심의 원인제공 역할을 하였을 뿐더러 그래 악 탐심을 일으키라 시비걸고 조장시킨 것이라 그래놓곤 누가 더 선업인가 악업인가를 논하여선 사람의 심상을 憂慮(우려)의 함정속으로 밀어넣는 형태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물고기가 그렇게 죽게된 원인은 무어란 말인가? 그물고기들은 전세에 사람들이었었는데 현세 사람들이 과거에 물고기 였었을 적에 약을 풀어 몽땅 잡아먹은 자들이란 [훌러덩 뒤집은]논리가 나오 지 않겠는가 내 말은 그런 뜻이다 그렇담 오히려 후생에 물고기로 태어나서 사람을 위하여 몽땅 죽음 받음이 그 원한을 푸는 게 되지 않겠는가? 이래 서로 사과하는 것으로 됐음 됐지 무얼 더 물고늘어져선 輪回(윤회) 운운하는가 필자의 말뜻은 그런 뜻이다.(또한 생각 짚히는 것은 석씨가 깊은 속 갈무린 뜻을 내보였다 할 것이니 즉 모든 것을 한꺼번에 해탈 시킨 자가 나온 종족이란 뜻이다= 무슨 뜻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을 것이므로 何人[하인]이 그 要旨[요지]를 말한다면 제 중생과 걸림이 있는 고뇌의 세상을 한 낫 물고기 떼등으로 비유해서 독한 약을 푸는 것과 같은 처방의 가르침을 해서 해탈시키는 방법을 취했다는 것이다. 그런 뜻을 뜻 속에 뜻이 있고 말속에 말이 있다고 은유법으로 숨겨 하나의 말 句[구]로 수많은 思量(사량)을 하게 하는 것을 갈무려서 가르켰다 봐야 할 것이다.) *즉 먹는 자만 용서할 관점으로 볼게 아니라 먹히는 자가 먼저 용서하는 관점이나, 내- 이렇다 하는 해탈 맛 보이는 관점으로 놓으면 어떨까 이다. 이래 모든 것이 억측 지레짐작일수도 있다 * 내 얘기는 이렇게 상호간 보복적 관점으로만 볼게 아니란 것이다. 그 해탈 맛 보이는 관점으로도 볼 수 있는 것을 꼭 굳이 나쁜 모습을 그려 나쁜 생각이 짚이게 하여 사람에 마음이란 걸 근심되게 할 필요는 없다할 것이다. 또 本無自性[본무자성]이라 하여 사람에 마음이 또한 어디 고정되어 있겠는가 할 것 아닌가?. 즉 헐뜯어서 이것인가? 저것인가? 사람에 마음 생김을 내보이라 한다면. 그렇기 때문에 즉 한 모양의 모습으로 고정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 마음이란 것이 諸行無常[제행무상]되어 고정되어 있을 수도 있으니 사람에 마음이라 한들 무슨 병폐의 헐뜯음이 있을 건가 이런 뜻이다. [(* 이말 뜻은 또 무엇을 가르키는가? 모든 것은 제행무상이라 하면 그렇게 말하는 뜻 또한 한 모양이 될테니 그 한모양을 부정하든 감싸든 파훼하던 또 다시 그것을 어떻게 변모하던 바로보던(*같은 향방의 시각이라도 생각이 각도를 달리해서 일어날 수 있음) 하는 모양이 있을 테니 그중엔 고정된 마음도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제행무상이라 하면 그 또한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이 그린 하나의 모양이 될 것이므로 그를 부정하는 파훼하는 또다른 제행무상이 있어 야 될 것 아닌가?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그를 파훼하는 제행무상속엔 諸行有相도 있다는 뜻이다.)] 일체가 다 사람의 생각으로 지어 내는 사람꼬득이는 어리석은 수작과 방편의 일과이니 하나도 믿을 것 못된다할 것이니 무슨 이 고차원적인 깨달음이나 理想이 란게 모두가 자아도취해서 남을 동패로 물들이려는 책모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니 그리해서 놀고 먹고 제삶을 살찌우려는 이기적인 발로에서 나왔다 봐야 할 것이다. 소이 종교 두목이 나나니 벌레와 같다는 뜻이다 [一說(일설)에 나나니는 아무벌레나 잡아다 제집에다 넣곤 "나나나"하면서 날개 치며 날 닮아라 한다면 고만 그 잡아다 넣은 다른 벌레가 나나니가 되어서 나온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동패로 물들인다는 의미]
*서씨 귀신믿는 무리들의 관점은 더 꼴불견이니 모든 부족한 관점 병페 瑕疵[하자] 잡히는 관점을 代束[대속]관점(대신 속박받은 관점)으로보니 이를테면 저사람의 한쪽 팔없어짐을 누구를 위하여 대신 짤려 줬다는 뜻이다. 즉 諸相을 원천적인 부족한 관점으로 보아 내가 이렇게 회생해줌으로 인해서 너희가 멀쩡하게 생을 유지할수 있게 됐다는 것이니 이 얼마나 꼴불견 논리인가? 그러므로 일체의 장애적이거나 병폐적인 것을 업장 응보적 관점으로 보는 것을 치우친 견해라 해서 배격하고 먼저 회생적인 관점 은혜 덕을 베푼 관점으로 본다는 것이니 저 꼽사등이는 전세에 남 등 꼬부라진 것을 대신 (회생해서 펴줬다는 표현을) 위했다는 표현이 그렇게 지어져 나타나 뵈 였다는 것이다. 즉 이런 뜻이다. 쉽게 말해서 西何人[서하인]이 형틀에에 메달려 있는 것은 사람의 원죄를 대신 사함받기 위해서 회생되었다는 논리이다. 그래서 그것을 내보이고 사람들의 정신 감관에 자극시켜 주입 시키기 위하여 저렇게 십자가를 숭상하는 표시로 삼는등 그에다 몰골 험악한 사람에 모습을 메달은 것을 내보여 믿음의 주체로 이끄는 방식을 삼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근원의 허물이 있다는 것이니 허물이 있다는 것은 무슨 과오(지나침)나 부족 불충한데서 비롯되는 것을 갖고 논하는 것인데 천지만물 및 인간이 무슨 원천적인 잘못이 있단 말이 인가? 있다면 다윈의 진화론을 따른다면 아직 덜 깨여서 그렇다 할 것이니 그 덜 깨인 것이 어찌 귀신속셈에 탈잡힐 일이란 말인가? 이것은 마치 갓난 어린애 터러 너왜 빨리 어른되어 일하지 않느냐는 뜻의 어거지 떼쓰는 것일 뿐인 것이다. 일체의 理想 귀신논리가 다 쓰잘데 없는 것으로서 사람에 심금을 후벼파서 병들게 하거나 황폐화시키는 없는 마귀의 꼬득임 같음인 것이니 일체 신용할게 없다할 것이다. 아니면 또 다른 뜻의 곡해할 소지가 있는 오류가 나오니 모든 걸 다 망가트리고 쑥대밭 만들거나 썩고 부패의 소지가 있는 것이 그 이전에 누굴 도와준 표현을 그렇게 짓는 것이라 할 것 아닌가? 그래서 누굴 패죽여도 그것은 누굴 전세에 살려줬다는 표현을 저- 맞아 죽은자가 지금 저렇게 하고 있는 것이라 해도 그 말이 궤변 같지만 사리에 당연히 맞는다할 것 아닌가? 또한 그래서 악성을 갖고 패죽이는 자의 합리성을 갖게 대변하는 것이 된다 할 것 아닌가? (*즉 나는 저-맞아 죽는자 그자의 보살행윌 하길 원해 福(복)을 짓는데 두들겨 패주는 일꺼리 분담 역할을 맡아 一助[일조]를 한 것이 되므로 나도 역시 보살의 반열에 설 수 있다. 이런 뜻) 하인의 생각이 꼭 그런 대로만 돌아간다 할게 아니라 사실이 그렇 잖는가 이말 이다. 마귀 말씀은 마귀란 뜻이 나쁘다는 인식을 줘 오히려 솔직해서 사람의心[심]을 치유하고, 일체의 좋다는 명분이나 명칭 및 그에서 비롯되는 甘言[감언]이나 甘想[감상]이나 甘行[감행]은 僞善的(위선적)이고 可憎(가증)스러운 것이니 하나도 신용할게 없다 할 것이다. 오직 아무렇게나 지껄여대는 아무러크소니의 말씀만이 허심탄회하니 위대하고 신용할만 하다할 것이다.*무엇이 절대적 가치가있어 절대자를 논한단 말인가? 절대자 운운 해가면서 그자의 명령을 듣지 않해서 사람이 원천적인 허물이 원래 있다하니 이것이 또한 성립되지 않는 논리이니 전지전능 무소불위 절대자라면 제명령듣는 자로하면 안될게 뭐가 있겠는가? 소위 제명령 들어서 허물이 있다는 것이나 제명령 듣지 않해서 허물이 있다는 것이나 어느것이 절대자의 뜻에 합리성에 부합되는 말일가? 이런 나의 물음요지이다. 또 절대자라면 하필이면 가련하고 불구장애적인 것만을 부각시켜 제 모습이라 할게 뭐가 있겠는가 그래서 그런자를 대접하면 저를 대접한 걸로 된다면 이것은 순다지 세상이 병신 불구 장애 天地가 우월하다는 논리가 나오지 않겠는가? 내 뜻은 그런 뜻이다. 또한 그렇다면 벌 나비가 아름답고 향기 나는 꽃을 갖고 맞아들일려 한다면 악마 사탄을 맞이 할려 드는 꼴로 여길 것 아닌가? 뒷논리 말고 앞논리 대로라면 그것은 사람에 심금을 후벼파려 드려는 귀신 우롱논리요 하등에 가치가 없는 논리이니 오직 슬픔이 일어나게 하는 논리는 선한 모습의 탈을 쓴 악마 사탄에 논리요, 화려함을 쫒고 맛있는 것을 동경해서 쫓는理想[리상]이 참으로 世人(세인)의 심신을 즐겁게 하는 논리로서 推仰(추앙)받고 신앙할만한 논리라 할 것이다. [[ * 선악 시비 논리는 그 모다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부려 쳐먹기 위해서 나약한 심상들을 이용하려 꼬득이기 위해서 만들어낸 논리로서 사람들의 심상에 대하여 공갈하고 협박을 가하기 위한 하나의 동원된 수단의 논리라 그 하나도 추종할게 없다는 것이라 오직 힘을 배양하는 데에만 모든 사람들은 몰두해야 한다할 것이다 所以(소이) 呵責(가책) 받는 심상을 각인시키기 위해선 그리하여선 저들의 주구로 부려 먹기 위해서 그래 그 적자생존 논리에 반하는 말도 안돼는 논리를 씨브렁 거린 것이라 그에 얽메일 필요가 없고 오직 악다구니로 도전의식을 갖고 그 승리를 쟁취 해서만이 인간의 복된 삶이 보장된다는 것이다 인간의 심상에 죄의식을 심어줌으로 인해서 저가 부려 쳐먹기 용이하겠음으로 덜돼먹은 그딴 선악 흑백 시비 논리를 들고 나서는 것이라 이래 쇠뇌 의식화가 사람의 심상을 황폐화 시킨다는 것이라 그 관점을 어디다 두느냐인데 깃겁게 할 것도 모다 죄의식을 심어주는 것으로 둔갑 질 할 수도 있고 죄의식을 들게하는 것도 얼마던지 정당시 미화하여선 사람의 마음을 환희 스럽게 할 것이라 그 관점을 어디다 두느냐에 달린 것이란 것이다 肉食(육식)을 하는데 이것을 살생으로 보느냐 아님 그 해탈 맛을 보이는 것으로 觀(관)하느야에 따라서 그 犬羊之差異(견양지차이)의 心狀(심상)이 刻印(각인)된다는 것이라 마땅히 사람의 마음상에서 어두운 구석이 존재치 않게 하는 것이 참다운 가르침이라 할 것이니 설령 처녀를 사통하고 사람을 서로가 함정에 밀어 넣는 행위를 짓는다해도 그것은 얼마던지 좋게 미화 변재 될수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사소한데는 얽메여선 선악시비를 논하지만 전장마당에 숫한 죽음에 대해선 그 선악이란 논리 比對(비대)를 끽소리 한마디 못한다 이러니 얼마나 편파성을 띈 논리를 갖고 떠벌이는 것인 줄 을 알 것이다 ]] (*혹 반대시각을 갖는 자가 있어 그것은 그런 게 아니라 은혜를 베풀어 사랑을 받아보겠다는 입장에서 자기를 낮춰 행하는 大德(대덕) 普施(보시)의 行事(행사)의 한=(壹)것일뿐 꼭 그렇게 斜視的(사시적)인 관점을 갖을 필요는 없다고 한다. 세상에서 소외된 부분들을 찾아 돌봐주거나 앞면으로 나서게하여 용기를 북돋는 것이고 있어야될 이유를 알리는 것이지 그대 처럼 원천적으로 그런 것을 조장시키려 드는 것은 아니라 한다. 왜냐하면 어느 일방만이 완전한 성립체로 보기엔 흡족치 않다는 것이니 수수거래 來(래)往(왕)은 마음에 안위를 찾는등 願[원]의 渴求[갈구]에 대한 適答[적답]을 위해하는 것인데 누가 누구를 위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나오니 즉 누가 누구를 위한바 없고 저마다 자기 원의 답을 찾아 세우는 모습이 그런 모양이라는 것이다 주는 자만 하늘 또는 부처가 아니요 받는 자만 또한 그렇다고 부처 또는 하늘이 아니란 것이니 전체주의 사상 같으나 어떤 한 모양에 합하는 것을 구하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 즉 일체의 심상을 나쁘게 하는 사상이나 주의나 논리는 사라져라이다. 이반면 기쁘고 즐겁고 아름다운 것 맛있는 것은 하염없이 싫증 안내게 시리 생겨나라이다. 일체의 불충분한 상은 내 눈앞에서 꺼져 버려라이다. 길딲아 노으면 문둥이 부텀 지나가지 말고 대통령 부텀 지나 가라이다. 혓바닥 널름거리는 大 [대망]의 계집년 머리카락 여기저기 널려져있어 나뒹구는 것은 내 눈앞에서 보이지 말라이다. 일체의 혐오스런 것은 좋은 명분(*일예로=하나님)의 탈을 쓴 악마가 뿌린 象[상]이니 사라져라이다. 오직 꾀꼬리 날고 철쭉꽃 피어나라이다. 그리고 쾌락을 위하여 저 가련하게 보이는 토끼를 흉칙하게 찔러 죽여보자 이다. 그 쾌감을 위하여 저주의 눈초리로 보는 것을 즐겨 보자이다 그저 똥개를 마구 두들겨 패 보자이다. 그 깨갱깽 거리는 소리를 듣길 즐겨 보자이다. 스트레스 해소 차원만 아니라 악성을 돋구어 그 악성이 어떻게 광적으로 나대는지 충동질 해보자이다. 사자가 맛있는 고기를 이를 앙시물고 뜯듯 잡아먹어 보자이다. 버마 아웅산에서 범 아가리에 들어간 것이 되어서 범이 아웅(어-흥)하듯 해서 많이 잡아먹어 보자이다. (*이것이 국기를 뒤흔들어 헐뜯는 말이라 할지 모르겠으나 당시의 군의 구테타 세력들이 정권을 잡고 어떻게든 잘 해보려는 한 일과속에 들떨어지게 대처해서 발생한 나라의 동량 인재만 회생시킨 결과를 가져온 일이라 할 것이다.) 이렇게 해서도 원이 풀리지 않으면 지친 듯 주저 않아 쉬어보자 이다 그리고 난다음 다른 소일거릴 찾아 보자이다. 저-비싼 애지중지하는 고려청자를 깨트려 보자 이다. 아주 악질적으로 나대보자 흉악하게 생긴 강도가 칼을 들고 찌러올제 살려 줍샤 싹싹 빌어 보자이다 아니면 대어들어 죽든 살든 혈투해서 네가 센지 내가센지 자웅을 결해서 결판을 내보자이다. 그강도가 그래도 용서를 해주지 않고 흉폭한 모습으로 칼을 찔러오면 으윽- 하던가 꽤액- 하던가 해서 일그러지고 뒤틀린 몰골을 해가지고 죽어 보자이다. 그리곤 산발 피칠한 귀신이 되어 가지곤 시뻘건 손톱을 길게 해 가지곤 이히힝- 너 잡아먹자 해 보자 이다. 이렇게해도 원과 원한은 풀리지 않는다 할 것이다. 그리곤 소중한 물건에다 오물칠 똥칠을 마구 해보자 이렇게 해서 억눌렸던 마음을 내보여보자 일체의 하지 말라는 극기사항은 마음을 억눌렀던 무거운 돌추 꼭채운 족쇄 이것을 다이나마아트로 폭파해 치우고 그 마음이란 것의 참모습을 보자 (*그렇다고 아무러크소니의 깨침을 주겠다는 말씀을 범죄를 부추기는 말로 해석하면 안될 것이다) 대체로 마음이란게 어떻게 생겼는가 말이다. 가증스럽게 위선을 떠는 껍질을 나무 껍질 벗기듯 벗겨 치우자 그러면 그 속엔 밤송이 속에 잘 여물은 밤알처럼 마음이란 게 들어있을지 모르리라. 아주 맛이 고소한 게 말이다.*사람에 마음은 성악도 성선도 아니다 촉감받은 외부반영 刻印(*佛家에선 이를 갖다 有漏(유루) 種子(종자)라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에 의해 思量(사량)함으로서 그 動搖(동요)가 일어 파도가 일렁이듯 나타내 보일 뿐인 것이다.*두뇌란 됫박에 각인종자 콩알, 손으로 이리 고르고 저리 헤집듯 굴리어 서로가 잘 조화있게 썪어 그 생긴 형태를 내보이듯 여러 刻印[각인]된걸 갖고 고르게 섞어 생각을 만두빚듯 빚어 내는 것이다. 점을 연결하면 線(선)이 되듯 각인된 覺[각]의 種子[종자]를 연결 늘어놓아 思量線[사량선]이 성립되고 그 累積(누적)은 면적이나 입체성을 띄어 갖은 象[상]을 다그려 나타내는 것이 곧 상념 相[상]으로서 천지 만물 우주의 생김象[상]이라 할 것이다. *생각을 그렇게 일으키게 하는 존재는 무엇인가?....마음인가?....*마음이란 무엇인가? (*成心 一切皆苦[성심일체고])=즉 일체 다 苦(고)로 이루어진 것인가?. 一切皆苦[일체개고]로 이루어 졌다는 것은 또 무엇인가? 苦[고]란 소위 입력시스템에 들어가 일체 입력되는 情報[정보]를 갖다 苦[고]라 할 수 있는데 입력시스템이란 또 뭔가? 有(유)이던 無(무)이던 實(실)이던 虛(허)이던 空(공)이란 器[기]이다 이 器(기)에 담기는 여러 각인된 정보종자 매채를 갖다 苦(고)라 할 것이다. 佛氏[불씨]는 이것을 고통의 맺힘으로 보았는지 알 수 없다. *정보란 또 뭣인가? (*自他[자타]란 것에서 얻어냈든 않 냈든) 뜻의 凝固(어려 엉김)를 말함인 것이다 또 뜻이란 뭣 인가? 意向處[의향처]를 말한다 의향처는 뭣인가? 마음이 짚히는 것을 말한다 마음이 짚힌다는 것은 그리로 짐이 쏠리고 기우는 것을 뜻한다 그리로 짐이 기운다는 것은 그릇에 골수가 무언가 짓기 위하여 편벽되게 한쪽으로 기우는 것을 뜻한다 소위 뜻이란 어떤 상을 그려 짓기 위하여 골수가 이리저리 움직임에 불과 하다는 것이다 또 골수란 무언가? 그릇에 담긴 빈곳 또는 實(실)한 것의 새김 새기지 않는것의 覺露[각로] 즉 象[상]을 그려짓는 테잎을 이루는 點[점]의 연결흐름 原素[원소]와 같다는 것이다. 그것은 우주생성 이치로서 아무러크소니 오십육억론 및 왜그런가장을 읽어봐야 대충 안다할 것이다. *여기서 그릇을 말하였는데 그릇의 實體[실체]는 무엇인가? 所謂[소위] 虛實[허실] 空有[공유]라는 것인데 그 虛空[공허]의 그릇은 實[실]한 것이요 담긴 것은 實虛[실허]한 事物[사물]이요 實[실]한 事物[사물]의 그릇은 허공이요 허공에 담긴 것은 일체를 지칭하는 허실의 사물이라는 것이다. 소위 이것은 저것의 그릇이 되고 저것은 이것의 그릇 또는 다른 것으로 발전 연계 전개되어 간다는 것이다.*이상과 같이 마음의 생김상이나 그형성 형태 및 과정을 일편 그렇치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조명하여 장황하게 늘어 나봤다..*우주 삼라만라상이 왜저렇게 생겨 있나의 논함에서 그것은 마음이란게 불어내어서 있다하나 대체로 마음이란게 어느 곳으로 불어 냇단 말인가? 그것은 마음이란 게 불어내서 있는 게 아니요 마음이란 그릇 속에 있음을 어떤 표현작자가 심상으론 깨닷고 있지만 적절한 표현방식을 구사치 못해서 그렇게 말한 것이요 마음의 내재속에 있을 뿐인 것이다 저 나무가 눈이 있어 사계절을 볼 것이며 저 꽃이 눈이 있어 벌의 기호를 알 것인가 오직 마음이란 空感[공감]을 갖고 깨달아서 눈으로 들여다 보는 것보다 더 확실하고 자세하게 앎인 것이니 일체의 모든 사물형태가 다 그렇게해서 자기존재의미를 아는 것이며 세상의 성립상태를 주지케 되는 것이다. 즉 마음속에 모든 사물은 존재하는 것이다. 마음이란 것이 여러개의 개체의 몸 껍질탈을 뒤집어 쓰고 마음속에 있는 것이 곧 우주삼라만상인 것이다. 그마음이란 걸 혹자는 空이라 할지 모르고 또 혹자는 絶對 作者[절대 작자]라 할지 모르나 마음이란 마음 일 뿐이요 어떤 理想(이상)의 주체로 둔갑 될수 있는 것은 아니니 거짓 꼬득임에 속지 말아 야 할것인 것이다.(*따라서 心感=空感 否定空感[심감= 공감 부정공감]일수도 있음)(*또한 마음이 내외가 어디 있겠는가? 사람이 생각을 지어 가르는 [분별]말로 표현하다보니 그렇게도 말해 보는 것이지.....)*마음이 그렇게 생겨 있으니 그러한 상을 짓는 것이요 즉 겉과 속이 같거나 다르거나 그 아니거나 등 여러 상을 짓는 것이요 그렇게 생겨 있지 않다면 어찌 그러한 못마땅하다거나 마땅하다거나 하는 상을 우그려 짓겠는가? 이 말이다. *마음밖에 원천적인 外部(외부)가 있을수 없고 따라서 외부 反影(반영)이라하는 것도 마음속에 일어나는 그림자를 그렇게 표현한 것일 뿐이요 마음 어느 한구석에 세워놓고 그것을 외부라하고 외부에 비춰진 그림자라 하는 것이요 별도에 외부란 있을 수 없는 것이니 촉감이란 것도 그 스스로 마음속에 일어난 것을 같다 촉감해 본다 하는 것이요 그로한 각인된 종자로 사량함 또한 마음속에서 함인 것이니 일체가 다 마음을 벗어나선 존재할수 없는 것이니 마음이 곧 우주인 것이다. 그렇담 그 마음이란 것이 실체적이고 고정되어 있어 저것만이 마음이라 할 수 있는 것인가? 마음이란 꼭 굳이 그렇치 만도 않으니 묶여있는 게 아니라서 변덕이 죽끌 듯 하는 것인지 모름이라 꼭 그것 만이라 꺼내 보일 수 없는 것인 것이다. 저 풀잎에 궁굴르는 아침이슬이 마음이란 것인가? 저 빨래줄에 맺힌 빗물 방울이 마음이란 것인가? 마음이란 그렇게 보기에 투명하다하는 것인가? 아니면 저 담벼락이나 암흑의 동굴 같은 것인가? 아니면 볼수도 쥘수도 들을수도 없는 것인가? 의문에 의문만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할 것이다.*성인이 지극히 평범한 기우는 말씀으로 지극히 기울지 않는 뜻의 가르침을 배우는 자를 위하여 말씀하셨으니 즉 壹 二 乘的 多乘的[일 이승적 다승적] 비례 관계를 늘어 놓아 無乘[무승]에 근접하려는 논리를 설파 또는 무유승 허실승에 가까운 논리를(*가르침을)말씀하시려 드신 것이다. (* 여기서 또 승이란 말을 하였는데 그 승이란 의미는 여러 가지가 있다 그중 乘[승]이란? 중생을 태워서 생사고해에서 벗어나게하여 涅槃[열반]의 세계로 이끈다는 말뜻인데 그럴려면 무엇을 어떻게 올라타야 하는 의문이 제기 된다할 것이다. 소위 올라탄다는 것은 發性覺[발성각]을 올라탄다는 뜻이니 깨달음의 粒子 種子[입자 종자]로 형성된 實相象體[실상상체]를 올라 탄다는 뜻이다 쉽게 말해서 생각으로 그려 허물탈 집을 짓게 되는데 馬[마]이나 수레 구름등 따위상을 들어 타는 것을 그려 올라탄다 고도 할수 있다 할 것이다 飛上[비상] 즉 나른다는 뜻도 약간 통하는 면이 있을 것이다 즉 깨우침을 올라탄다 정신영역이 확 트였다는 뜻이다. 思慮[사려]나 그로 아니한 것이나 얻은 깨침을 갖다 올라탐을 뜻하는 뜻이라 할 것이다. 또 여기서 그뜻이 연결될는지 안될런지는 모르지만 昇華[승화]의 관점으로 해석한다면 이말은 사전에 보면 정신영역의 용어로서 무의식적인 性的[성적] 에너지가 예술적 활동 종교적 활동 등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활동으로 전환되는 것을 말한다하였고 또 물사의 영역에선 어떤 현상이 더욱 높은상태로 돌입하는 것을 말한다하였는데. 이를 물사와 정신영역을 접목시켜 말해본다면 깨침의 단계가 어느 한고비를 넘겨 무르익어 곰삭었다는 뜻 환골탈태하듯 변모한 모습을 가르키기도 한다할 것이다. 또 勝(승)이란 보다 낳거나 눌러 제압하는 것이나 겨루어서 이기는 것을 말하기도 한다 할 것이다. ) 내가 다분히 성인의 가르침을 비방 헐뜯을려는 것만이 아니라 차근히 살펴 곰곰히 생각해보면 그렇다는 것이니 소위 諸樣相[제양상]을 뜻하는 것이나 제양상을 뜻하지 않는 것이거나 등 兩端(양단) 또는 無無量(무량) 牙角[아각] 端(단)을 들어 비교케 하여서 비교아닌 것 비교할 것 없는 것에 도달케 함인 것이니 따지고 보면 가르침에 모순 말씀에 모순 뜻에 모순을 갖고 모순 아닌걸 설파하려 들었다 할 것이다. 그 말씀이 극히 편벽되지 않은 것 같으면서도 편벽된 모양으을 그려 진행해가면서 편벽아닌걸 가르키려 들었으니 그 곤혹함이야 말로, 글 말뜻으로 다 표현치 못한다 할 것이다. 세상에 空[공]을 추구한다 해놓고 여러 치우치는 말을 들어 가르치려 들었으니 번복되는 과정이 연속적으로 계속일어 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즉 이뤘으면 걸려서 空(공)아닌 것이 되므로 금새 이뤘다간 곧 파괴하는 말씀을 아니 할 수 없게 되있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말씀이 길게 늘어 나고 했던 과정을 되풀이 하는 경향이 있게되고 역겹게만 느껴지게 하여 극기의 한계를 보고자함에 도달케 함인 것이다. 즉 아궁이의 불이 언제까지나 더 세게 탈 것인가? 내 궁둥이가 다 탈망정 나는 일어나지 않으리라를 보려 드는 것과 같다할 것이다. 즉 忍耐[인내]의 한계 의 겨룸에서 승리한자가 곧 大聖覺者[대성각자]란 뜻이 나온다할 것이다. 즉 이와같이 하여 어느 목적한 경지에 드는 것을 보려 하였던 것이다.*구슬은 좋은 것이나 그보다 더 좋은 것 있다는 것은 편벽된 논리로서 이와 같은 논리로서 평한 가르침을 준다하면 더 좋다는 것이 기울지 않는 평한 가치가 있을까 이다. 평한 것이 아니라 기울다 못해 수직적인 것이 될 것이다. 꼬챙이를 세워놓는 논리는 그외는 평이 혹 될 수 있는 것이 있을지 몰라 그것을 가르키기 위하여 그렇게 세웠다면 혹 평의 뜻이 될진 모르나 그 꼬챙이 자체로는 수직적인 꼬챙이지 평이라 할 순 없다. *선생이란 것을 가르키기 위해서 제자가 있다 그러므로 선생을 가르키기위한 제자이니 그 또한 선생이란 논리가 나온다는 뜻이다. 즉 오른 것을 가르키기 위한 '그른 것은' 오른 것이란 뜻이다. *위한다는 것은 보살 성향이요 佛體(불체)를 이루게하는 것이니 解脫(해탈) 引導者(인도자) 濟度者(제도자)라 할 것이다.이와 같은 논리이면 수직적인 꼬챙이도 수평의 막대라 할 것이다.
* 諸樣相(제양상)속엔 시간감 이라는 것도 있다 이것이 중요하니 사람들은 혹 이것을 등한이 할는지 모른다 그러나 시간성향은 가르침에서 중요한 자리메김을 하고 있다 제양상에 머물지 말라는 것은 이 시간감이라는 것도 염두에 두지 말라는 것이니 계속 궁구 깊이 파고든다면 시간이라는 것은 원래 없다에 도달하는 생각의 길이 열릴수도 있다 할 것이다 이것은 치우친 견해 佛(불)氏(씨) 말을 잘못해석 한 諸法斷滅(제법단멸)로 본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제법단멸상 아닌 것으로 본다면 그 안엔 제법단멸로 볼 수 있는 게 있는 법 즉 그것만이란 진리를 말하는 것이 아닌 것이 제법단멸이 아닌 한편으로도 볼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시간감이 없는 걸로 본다면 석존의 가르침을 볼진데 부처는 시간에 의해 흘러 래왕하는 것이 아닌 게 되므로 부처님은 항상 존재하는 것이되니 저기 절에 계시는 부처상은 이제나 저제나가 없으니 연등불전에 서 연등불이 수기하길 너는 내세에 부처가 된다 수기하셨다하는데 지금 저렇게 계시는 것이 곧 연등불께서 수기하는 모습이요 연등불이란 저 전등 불빛이나 일체 볼 수 있게 느낄수 있게 하는 感性向[감성향]에 것이란 뜻이요 또한 연등불께서 어디 따로 계신다는 뜻은 아닌 것이라 할 것이다. 이것이 마음에서 일어나 마음에 비춰 보는 방식이니 부처가 어느것 어느곳에나 어떤 형태로 던지 있다면 있는 것이요 그것을 가르침을 받는 중생의 위치로 놓고 본다면 또한 그렇게도 보일수 있는 문제인 것이니 마음의 짚힘에 있다는 것이다.*끝에가선 말하길 어떻게 청중에게 연설하는가? 불퇴전에 용기를 가져라다. 모든 것이란 한낫 별 것 아닌 것이니 겁내지 말라는 것이다 베옺 입고도 허리를 꼿꼿히 펴서 비단옺 입은자와 마주서서 말한 자는 공자 제자 子路(자로)였고, 釋尊(석존)은 일체 것이 그림자 거품등과 같은 것이니 눈망울 바라봄을 두려워 떨지 말라는 것이니 한 낫 지프라기 세워 논 것 정도로 여기라는 것이다 이것이 해탈을 갈구하는 중생 아닌 중생들을 대하여 겁먹지 않고 연설하는 자세라는 것이다.
* 중생은 없나니 세상에 부처들이여 아라한이 되었으면 일체 꼬득이는 감언이설 하지를 말거라 또 감언이설상을 세상이라 하지를 말라 또 너들이 중생이라 스스로 전락하고 유혹 감언이설에 도취되지 말것이다
* 석경 한 구절의 감상 평론..*釋弟의 말로는 물질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영혼 까지도 분해되듯 흩어져서 영원한 것은 없다 했는데 이에 대해서 느낀바 의문 나는 점 있어 한말씀 하고자 한다. 영혼까지도 흩어진다면 지금 그 영혼은 물질처럼 흩어져서 사방으로 흩어졌다할 것이다. 또 영혼이란 무엇인가 ? 귀신의 종류이던가 그 뭉친 덩어리 던가 아님 유령종류 신령종류나, 얼 결이 베여 숨쉬는 것 등등 정신적 感象으로써, 어떠한 물질적 감각에 의해서 느껴 지는 것은 아니라 할 것이다.(*물론 物質象이 영혼을 배제하곤 성립될수 없다 하지만 그 물감적인 것을 육감의 차원 일수도 있는 영혼감이라곤 하기엔 거리가 좀 있지 않을까 이다.)앞서 말했듯이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 했다 그렇다면 그 흩어진 것은 영원하겠는가? 언젠가는 다시 원인이나 여건이 조성되면 긁어 모여 다시 뭉칠 것 아닌가? 하는게 내 의문에 요지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영혼 또한 그러한 수순에 의해 긁어 모이지 않을 까 이다 그러므로 영혼이 흩어 졑다 하등에 근심하거나 무슨 병폐 잡을게 없다 할 것이다 이를테면 여기 금 덩어리가 있다 이것을 분해하여 사방으로 흩었다면 그 금을 긁어모으는 방식을 취한다면 금은 다시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 방식이란 무언가? 사람들은 금을 채취할 때 여러 가지방법을 동원하는데 그중 한예로 사금의 채취라면 당연히 물에서 모래를 일어 금을 채취하게되는데 그 뭉치게하는 것은 수은이란 또 하나의 광 물질을 택하여 하게 된다 그렇다면 흩어진 영혼을 긁어 모을려면 어떻게 해야할 것인가? 모든 인식 성향에 것이나 감상에 성향은 그 감상케하는 주체 성향이라는 게 있다 즉 색으로 논할진데 색이란 보는 것의 주체성향이라는 것이다 즉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는 한 빛갈을 띄는 성향의 것은 그 한 빛갈을 긁어모으는 어떠한 방법을 택한다면 긁어 모으게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의 취합도 그 긁어모으는 방법이 있다면 그 방법을 택해 긁어 모은 다면 흩어 졑던 영혼은 취합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대체로 그 방법이란 무언가?. 모든 사물상 및 영혼은 저가 그러했다는 것을 또는 저가 그렇다는 것을 주지시키는 감식성향이 있다 그것은 곧 그것의 그것을 현상시키는 업적 행적과 같다 바로 그런 것이란 것이다 즉 영혼이 흩어졑다는 것은 바로 이 業績(업적)이나 행적의 자취가 퇴색되거나 멀어져가 아득히 묘연해져 사라졌다는 뜻이니 그 업적이나 행적을 다시 찿아 세우면 그 흩어졑던 영혼은 다시 취합하게 된다는 논리이다. 어떻게 찾아 세우는가? 이것이 방법론이라는 것이니 무슨 물질적인 것으로도 한다 하지만 마음이나 정신적으로 도 찾아 세울수 있다할 것이니 사람등이 생각을 그리는데로 쫓아 영혼은 긁어 모이고 원상회복을 하게 된다할 것이다. (*마음과 정신 영역은 흩어진 금을 긁어 모으는 수은과 같다.) 즉 思量하는곳으로 쫓아 흩어졌던 영혼은 다시 일어나게 된다는 논리이다 무너진 예전 저 바위의 영혼을 복원한다면 생각을 생산해 낼수 있는(*창출해 낼 수 있는 주체) 주체(*사람등=사람만이 생각을 한다할 수 없다 일예로 저 나무는 생존을 위하여 춘추를 思量한다. 한다면 그 또한 생각이라 아니할 수 없는 것이다.)등이 그 영혼을 머리등(*다른 물사는 그 형태가 머리 아닐 수도 있음)에서 그림으로부터라할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어떠한 사람의 영혼도 구천에 흩어져 내라할게 없이되었다 하더라도 그가 남긴 자취 업적과 행적이 있다면 얼마던지 그 영혼을 복원 시킬수 있다는 단계에까지 나아간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그 영혼이 흩어진걸 하나도 근심할게 없고 모든게 영원한게 하나도 없다는 말에 병탈이 잡혀 영혼이 흩어지면 어떻게하나.... 하는 우려는 떨쳐버린 게 된다는 것이다. *또 연금술이란 말이 있다 여건에 의해 본질의 변형이나 환태되어 엉뚱한 성향을 띌수 있듯이 이처럼 금 아닌게 금일수도 있게됨이라 그래서 영혼 아닌 것도 영혼으로 환태될수 있다는 논리가 나온다 모든 감지성향이 다 그렇다면 물사와 영혼이란 것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할 것이다 저 감나무는 과거의 돼지의 영혼이었고 지금도 돼지의 영혼일수도 있는 문제이요 지금하인은 옛 어느 낫다하는 일체 모든 성현이나 그대변이라면 대변일수도 있는 싯탈타와 그이전 이후의 모든 각성 성향의 것이거나 마귀사탄 중생이었다 해도 말이 된다 할 것이다.... 저들이 지금 말하는 것은 사람에 마음을 속시원하게 치유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 근심되게 하여 병들게 하는데 속셈이 있는 것처럼 보인다할 것이다 그래서 병들은 마음으로 병귀 해탈을 시키겠다는 것이다. 즉 오르게 말하는 것처럼 보여도 모다 중생을 병들게 하는 가르침이요 오직 이 아무러크소니의 아무렇게나 해되는 말씀이 고뇌에찬 제양상의 중생들을 멸도 시키는 말 씀이라 할것 이니 모두 이 何人의 말 씀을 들어 야 해탈을 할수 있다는 것이니 일체의 꼬득이는 말에 넘어가 물심을 빼앗기고 황폐화 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즉 저들이 말하는 것은 오른 것 같아도 오른 것이 아니요. 그른 것 같아도 그른 것이 아니니 시비를 어떠한 가르침에서 찿으려 할게 아니라 자신이 궁구해서 합리성을 띄게 해서 결정할 것이라는 것이니 똥은 떡이요 떡은 똥이란 것이다. 즉 모든 것을 삐뚤은 조명 고약한 심사를 내보여 뒤틀어놓는 것처럼 보여야만 제대로된 관찰을 할수 있을는지 모른다. 저는 실천 않으면서 주둥아리로만 살아 나블거리면 이것은 남을 기만하여 무슨 영리를 취득하겠다는 장사아치의 고단수 수단 파는게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니 파는 자는 제 실리를 倍加하기위한 노력이라서 탈이 없다 할지 모르겠지만 정신팔려 넘어가는 자는 普施먹이의 道를넘어 바보껍질로 취급받아 쭉정이 해탈상을 뒤집어 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체의 감언이나 감행이란 것에 넘어 가지 말 것이니 산삼녹용의 보약성분 효력이 저 산삼 녹용이라고 가르치는 그물질에 있는게 아니라 내 심정에 있으니 한 낫 저 좋다는 것을 불쾌하거나 더러운 것으로 여기면 그렇게도 될 수있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제중생 세인들에게 권하노니 좋은 것은 나쁜 것으로 나쁘다하는 것은 좋은 것으로 보길 힘쓸 것이다 이렇게 심사 뒤틀려 비뚤은 것처럼 보이는 가르침을 주다. 내 심사를 그려 내보이라면 내 모습은 아이스크림 스크류바나 꽈배기 과자를 연상하면 될 것이다..
*그 가르침이 衆生(중생)을 바르게 引導(인도)하는 것인가?.
*깊이가 쪽색처럼 물들은 중생을 탈파 시키기 위해 극약 처방을 한다는 것이 모질고 악의에 찬 말로 엄포 공갈하여 되려 병들게 할 필요가 없다할 것이다. 그 쪽색 처럼 된 것도 일편의 탈파 방식에 속하지 아니한다 어찌 장담할 것인가 이 말이다. 하필 자기의 주장만 갖고 남을 물들여 파괴해 치울려 할 필요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절대법이지 무위법은 아닌 것이니 자가당착 모순에 빠진다 할 것이다. 일체의 겁주어 마음 여린자에게 공갈하는 듯 한 가르침에 말씀은 중생을 되려 병들게하는 것이지 모든 상을 여윈 참 보살 인도자라 할수 없을 것이다. 무슨 그렇게 마음에 꺼리는 게 많아 자신 없어 하는 말만 변명하듯 늘어 놓는가 한다면 자신 없어서만이 아니라 사실이 그렇 잖는가? 내 말은 그런 뜻이다 업보 응보 윤회설을 듣다보면 앞과 같은 생각이 돌수도 있는 문제라 할 것이니 못되고 험악한 뜻의 말만 들추어서 중생을 제도할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세상에 왜 까시만 있겠는가? 염증 안나는 감로나 꿀도 있는 것이다. 석존이 말하길 그 마음을 다치지 않게하고 좋은 길로 이끄는 자가 참으로 능력 있는 보살이라 목건련을 칭찬하는 말씀중에 있었다. 내가 본을 보여 저가 비꼬기에 앞서 참으로 우러나는 마음을 갖게할 순 없을 까? 내 생각은 그런 뜻이다 본을 보여 자발적인 마음을 일게 한다는 것은 보통성의가 아니곤 어렵다할 것이니 잘못하면 위선에 탈을 쓴 것으로도 보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혹은 그렇게 보여도 제도하기 위해선 아니하는 것보다 낳다 할는지 모른다 할 것이나 그렇게 하는 것은 위선의 모습도 함께 가르켜 주는 결과라 할 것이다. 소위 위선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잘하지 못하는 자가 비꼬아서 보는 관점에서 나온 말일수 도 있는 것이니 위선처럼 보여도 위선이 아닐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위선은 없다에 도달 할수 있다 할 것이다 얘기의 본질이 변해 가는 것 같다 내가 말코자 하는 요지는 사람에 마음을 황폐화시키지 말라는 것이다. 언젠가는 겪어야 한다는 보복적 복수적 차원의 논리 전개가 업을 탈파시키는 뜻의 전부는 될 수 없고 그런 논리는 큰 가치를 부여 할 수 없는 전개 방식이라는 것이다 즉 생 양가죽 벗기는 논리는 극약처방이기에 앞서 일고에 가치도 없는 논리라 할 것이다 그렇다고 뭣을 어떻게 한다면....하는 탕감논리 또한 정당화 논리라곤 할 순 없다 이것은 활빈당의 논리이니 도둑질하고 베풀면 정당화 될 수 있다는 과정을 무시하고 목적 만 중시한 논리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를 본다면 시건방지게 나서서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것은 참으로 꼴불견일수도 있는 문제요 相[상]을 여윈 제도란 진정 어려운 일이라 할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생활이 모다 전세의업을 벗는 것의 일과요 또 새로운 업을 짓는 것의 일과려니 생각한다면 별도로 튀게나대어서 모난 비평을 받는 것보다 낳으리라 그러므로 사회규범을 지키고 생을 위해 주어진 업무에 열심히 노력한다면 굳이 해탈을 위해 달리 모색할 필요가 없다 할 것이다. 석존께서 나는 불법승 일체가 되어 시간감을 떠난속의 僧弟[승제]의 일방도 되어 저 가람속에 있어 제 부처님 공양하느라고 하지 못하지만 若復有人[약부유인]은 시간감아닌 시간감속에 연꽃이 뿌리 내린것처럼 하고 있으니 어떠한 공덕으로 비유할 계제 꺼리 감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만 같다. 꽃피고 열매 맺고를 거듭하니 온 세계를 여러 가지 모양華[화]로 덮을 것이니 어찌 나의 노력이 거기에 견쥬랴 하는 겸허의 말씀이시다. 去現未 三界[거현미 삼계]가 한군데 일군락을 지어 꽃처럼 피어 있으니 저 가람속의 밝히는 연등은 연등불이요 주위조성은 팔백사천만억 나유타 즉명제불이요 무공과자 승계는 경내를 거니는 화상 참선 염불하는 이로다.
사람으로 계속 태어나는 방법.어느한가지...
*하인이 휘미진 계곡길을 지나다가 사람들이 천렵을 나와서 伏(복)때라서 개를 잡아 먹는걸 보게 되었다 때마침 우연에 일치로 스님이 그곳을 지나다가 스치는말로 "쉬이- 쯧쯧 살생유택인데 개를 저렇게 잡아먹어서나 쓰나 나중에 후생에 개로 태어나서 고통을 받을려면 어쩔라고" 하면서 가신다 그래서 하인이 생각하길 그런 방법에 논리라면 내에겐 인간 탄생의 연중 쉬운 방법이 있다 생각했다. 만약 내가 世世(세세)生生(생생)토록 사람으로 태어나서 영달하길 원한다면 사람을 잡아먹으면 어떨까 하고, 모든 지어진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하니 뭣으,로 태어나던 부숴지고 없어질 것은 사실 아닌가? 그런데 뭐가 꺼릴게 있다고 자꾸 번복되는 죽음을 두려워 할 것인가? 내 말은 그런 요지다.부처도 영원할 것 없고 어떠한 법상이나 그것만이 아니란 것도 영원할 것 없다 할 것인데 무엇에 두려워 여러 理想 을 펼치려 드는가 이 말이다. 여하한 형태던 보복성 논리라면 제위치로 돌아온다는 뜻인데 순간에 영화라도 누리는 사람으로 계속 태어나는 게 다른 것으로 태어나는 것보다 낳지 않을까 이다. 그러니까 사람으로 계속 태어날렴 사람을 많이 잡아먹는 게 사람으로 태어나는 길이 아닌가 이런 내 생각이다. 나는 너를 잡아먹으니 후생에 네밥이 되기 위해 또 사람으로 태어날 것이라는 것이다. 밥이 될땐 될 값이라도 우선 사람으로 태어나서 갖은 향락 누린 다음(*싯달타가 왕의 아들로 태어나서 갖은 향락누리고난다음 염증이나서 고상한 취미를 채택해서 즐기려든 게 바로 불법이라 하는 듯 이 보이는 것처럼) 잡아먹힌다면 맛보이는 해탈차원의 경계일 것이니 무슨 분한이 생길 것이면 무슨 원이 또 있겠는가? 이런 뜻이다.
* 지금 그대의 처지가 전에 왕자로 갖은 향락 누렸었는데 그때도 이런말을 하였는지라 이제 그 말대로 修道(수도) 精進(정진) 속의 日課(일과)일수도 있는 逆境(역경) 속에 들어 있다한다면 또 그 말이 되지 말라는 법은 없다할 것이다
* 와불처럼 누워있다 잡힌 망상.하인이 길을가다 드럼통을 뒤집어 쓰고 있는 사람을 보게 되었다. 그래서 물었다 왜 드럼통을 쓰고 있느냐?고, 그랬더니 그 사람이 대답하는 게 걸작이라 들어보니 이렇다= "나는 남을 싫컷 두둘겨 패주고 싶은데 그 패주기에 앞서 남이 먼저 나를 두둘겨 패주면 어떡하나하고 그 방비를 위해서 이렇게 뒤집어쓰고 있다"고.....그래서 하인이 말하길 그걸 뒤집어쓰고 있으면 남은 어떻게 때려 줄 것인가 했더니 글쎄 그것이 고민거리라 혹 이렇게 하면 어떨까 생각중이라나.... 드럼통채로 확 굴러가서 부딧쳐 주어 앞프게 하면 어떨까 하고 말이다. 그래서 하인이 생각하길 원 별 미친 생각하는 놈 다보겠네 했다. 나는 아프지않고 남을 때려 줘 아프게 해 주는 방법이 세상이 그런 것이 다라면 다고, 다 아니라면 다 아니라 할 것이니 주어 섬겨 말이되게 하면 안될게 없다 하였다. 그래도 안될 것은 안된다고 또 한쪽 심상이 삐쭉하게 나댄다. *달고, 고통이 마음에 있으니. 내 닮이 저쪽의 고통인줄 모르고 내 고통이 저쪽의 닮인줄 모른다는 말이나 또 너나 같은 견해나 입장이나 주의사상 이라하는 것등은 그 나중 問題事인 것이다.*이처럼 남을 때려주고 싶은 욕망이나 목적은 무언가? 그것은 마음에 쾌감을 느끼기 위해서도 그렇다 하겠지만 탐욕에서니 즉 맛있는 거 이쁜거 빼앗기 위해서인 것이다. 그래서 제 목적 달성을 성취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何人은 이렇게 마음에 일어나고 품고있는 것을 여가 없이 말해 솔직한 면을 내 보일수 있지만 세상 대부분은 어이 그런가 모다 가증스런 위선에 가면을 쓰고 위선에 무길 갖고 조자룡이 흔칼 휘들르듯 하고 있는 것이다. *착하라 하는 몽둥이와 법을 지켜라하는 칼과 일하라하는 창과 배우라 회생하라 양보하고 봉사하라 어른을 공경하라 효도하라 자애설 겸애설등 갖은 백가사상의 위선에 탈을 쓴 독창을 들고 대상을 찔러 맛 있는거 이쁜거를 빼앗고 있는 것이다 그래못하는 너 가 배가 아퍼서 남 하는 게 배알이 뒤틀리고 속 뒤집히고 해서 눈 까뒤집곤 샛눈을 해가지 곤 그 말도 안되는 궤변을 늘어 놓는다 할는지 모르지만 내가 능력이 없어서만이 아니라 그 더러운 위선에 탈을 쓰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인의 말이 뭐 틀린 게 있는가? 聖人들이 복기(*復起)샤도 내 말을 뒤집지 않으리라...
*바로 보고 바로 해석하라.법구경에 있길 어느 여인이 자기의 미를 뽐내어 자긍심이 대단한걸 석존께서 조건에 의해 지어진 모든 것은 제행무상 이란 걸 깨우쳐 주기위해 설법 들으러온 그에게(*기실은 부처님을 자기의 미모로서 유혹 시 켜 보려고 왔다 한다) 환영을 지어 비춰주길 세상에 그지없는 미인을 만들어 부처님곁에서 시중드는 모습을 나타내시언 그여인이 차츰 차츰 퇴화하는 모습을 그리어 비춰 결국엔 그여인 쭈그럭 늙은이가 되게하여 자기가 배설한 대소변에 미끄러져 죽는 모습을 그린곤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아 개굴청에 내버린 몸에 부패케해 구덕이가 득실거리는 모습을 비춰주면서 제행무상의 깨우침을 주시고자 했다는데 이것이 반에 반쪽에말 씀만 제자들이 무슨 잇속 때문에 뒤 사람들에게 전했다고 봐 야 할 것이다. 자- 그러면 何人[하인]이 시건방지고 주제넘게 그 반쪽을 마주 설명하여 모든 이의 마음에 맺힌 응어리를 풀어 주고 자한다. 어리석은 석존의 제자가 불씨말씀을 반만 설명하다 말았는데 그 다음 반쪽의 석씨 의중은 이렇다 모든 것이 제행 무상이니 앞 전개한 사항의 역 작용이다. 즉 필름을 거꾸로 돌리는 것과 같으니 저 아름다운 여인은 바로 (*고름이 뭉치면 고운 꽃도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이) 진흙에서 핀 보살화 연꽃이니 滿衆生(만중생)을 즐겁게 해주기 위해서 피었다 그런 데 그여인은 스스로 가 그러한 줄 제대로 깨닷지 못한 모양인가? 그래서 그 반쪽만 내가 가르켜 줘서 그 여인 및 모든 이에게 깨우 침을 주고 자 하노라 하심이었던 것이다. 이런 것을 못된 제자들이 중생을 기만해 시주 받는데 눈이 어두워 서인지 중생의 마음을 근심되게 하여, 없는 악의식을 있는 것 처럼 상상 해서 심어주고자 했다 봐야 할 것이다. (*멀쩡한 사람을 무슨 허물이 있는 것처럼 이쁜 것을 보고 이뻐할줄 모르고 무슨 고름덩어리 뭉침임네 모다 허망한 것임 입네 하곤 몰아 부쳐 고를 벗고자 허덕이는 사람에 마음을 치유 해주고 자 않곤 엉뚱한 말만 늘어 놓아 점점 미궁에 들게하여 허덕이게 하고 있는 것이다) 무슨 탐착인가? 그여인이 자기의 미모로서 삶에 긍지를 갖어 여한 없는 해탈을 갈구 케 않곤 엉뚱하게 시리도 상을 탐착하여 얽메인 것으로 몰아 부쳤으니 관점이 잘못 됬어도 한참 잘못 됬다 할 것이다. 모든 중생은 그 허물 껍질을 쓴 상당한 이유가 있다 하겠거늘 제 노릇대로 하게하다 풀고가게 하는 게 지당한 해탈 논리거늘 그걸 막는다는게 될법한 논리인가? 저까시는 찔르기 위해서 태어났고 저 사자는 잡아먹기 위해서 태어 났고 저꽃은 미모를 보이기 위해 태어 났고 바람은 불기위해 있고 비는 내리기 위해 있어 질서가 그렇게 정해져 있어 잘 굴러 가는데 무엇이 배알이 뒤틀려서 사시적인 관점을 갖고 무슨 이상 철학입네 하고 중생을 기만하여 잇속 챙기려 드는가? 또 그대가 말하길 나는 그러기 위해서 태어났다 할 것인가? 그렇다면 말이 된다할 것이나 그 또한 제 위치를 지키는 범주에 벗어나지 못한 앞 이론을 스승삼는 제자 입장 밖에 되지 않는다 할 것이다. 바른말만 골라하는 하인을 증오와 악의에 찬 화신이라고만 하질 말라.
*불씨가 전후세를 말한 것은 (*전후세만 아니니라 다른 여러 말씀도 그렇다) 마음에 부담을 더는 방편으로 활용 하라는 것이지 마음이 부담을 지우는 도구로 이용하라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말팔아 먹는 간교한 무리들이 제 실리의 도구 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順民[순민]을 어리석다하여 바보취급하고 엄포공갈 협박하여 근심덩어리를 안기고 있는 것이다 .아무러크소니 말씀하시대 빙자거리 합리성만 띄면 (*극단으로 단언 하건데 설령 그 아니라도 이칠 긁어 모으질 못하더라도)무슨 일을 해도 상관없으니 회유하는 공갈협박의 似而非[사이비] 말에 넘어 가지 말라는 것이 다. 즉 지옥 없고 고해 없고 어떠한 고통의 주체될만한 것이 일체 없으니 무슨 짓을 하던 근심걱정 떨쳐버리라는 것이다. 살려달라고 싹싹 비는 것도 매몰차게 죽여도 상관없고, 갖은 사악하고 못된짓 이라는 것을 했다 해도 상관없으니 일전 놓고 애걸하지 말라는 것이니 원래 모든 게 없는데 그대가 마음에 걸려 해서 일전 놓고 비는데서부터 모든 邪相이 일어나 존재 케 되는 것이니 절대로 어떠한 꾀임에도 빠지지 말라는 것이다. 귀신에게 살려쥽샤 비는 것은 바보이고 하느님 일양만강 하오십니까? 문후드리는 것은 일면 허세같이 보일는지 모르지만 대인에 면모를 보여주는 모습이라 그 업이 그 업이라 어찌 쫌생이 대접을 받을 것인가 이런 뜻이다. 그래서 때로는 화탕과 부월을 두려워 않는 대범함을 보여줄 적도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五感(오감)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 諸感象[제감상]엔 예의를 차리고, 諸無感象[제무감상]엔 책잡히는 道[도]를 잃어 헐뜯고자하는 빌미를 제공치 말고 눌러 잡으라는 것이다. 귀신이 어떻게 하던 잡을려는 덫을 노을테므로 거기에 또한 너무 구애 될 것도 없다는 것이니 일체의 사악한 여건 조성이 귀신의 덫 모양이므로 귀신의 헤짓거리가 원래 그러하므로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것이니 염려 붙들어 메 놓으라는 것이다. 내가 내 갈길을 간다면 설령 어떠한 상항이 닥쳐 먹이 밥이 된다 하더라도 내 心[심]은 떳떳하다는 것이다.
*假成體가 主成體인것처럼 感識할수 있다..
* 어떠한 지식이나 최면이나 등 覺性[각성]행위를 갖고 여타의 정신영역을 제압한다면 실제 자기 아닌데도 어떤 覺性[각성]의 假成體[가성체]가 자기 정신에 들어와 자기인체 행세한다는 것이다. 즉 자기의 일거수 일투족이 가성체의 행위인데도 실제로는 자기행위인 것처럼 그렇게 느껴지고 그렇게 행세한다는 것이다 이렇다면 어떠한 머리에서 일어나는 覺醒 靈感[각성 영감]이란 것 또한 자기가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는 것에 도달하게 됨이니 三界 과거 현세 미래의 윤회 업보적인 논리가 하나의 가성체로 자기 아닌 것으로 부정시 될 수 있다는 것이니 또한 실제로도 그런지 모른다는 뜻이다. 일예로 釋氏가 각성한 의지를 어떤 자의 정신영역에 보내 그 정신을 누르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그의 행위인 것처럼 조성해서 삼세의 모습을 비춰 보인다면 그것은 하나의 가성체 에 불과 할수도 있다는 것이다 즉 자기는 삼세에 그런바가없고 삼세란 뜻조차 모르는데도 정신영역이 제압당해 실제 자기가 겪거나 겪을 것처럼 여길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말은 易言[이언]해서 무슨 뜻을 가리키고자 하는 것인가? 즉 갑의 정신에 을의 영혼이 들어와서 甲(갑)이 자기가 전현세 및 미래세에 을씨인 것처럼 여겨 지게 된다는 뜻이다 그렇타면 前現未世[전현세미]의 업장이란?.... 어떤 목적을 가진자가 자기 목적달성을 위해 그럴사하게 꾸며낸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 무슨 목적? 자기 理想을 펼 목적)즉 일체의 업장이란 것은 가짜 거짓 꾸며 만든 것으로서 부정시 되는 경계에 도달한다 할 것이다 斷言[단언]한다면 業障 輪回[업장 윤회]는 없다 이다 지어낸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공갈 협박에 떨 공포는 사라지게 되었다는 것이다 (*故 無有 恐怖)= [고 무유 공포]. 의식을 갖는다는 것은 정신이 의식을 注知시키는 여타에 강하게 억압받거나 제압 당했다는 뜻이니 그런 의식을 벗어 치운다면 심적인 공포는 소멸해 진다는 뜻이다 계속 윤회 삼세가 있다고 주지시키고자 하는 자 또한, 의식 창시자에게 강력한 영향을 받아 의식에 괴뢰가 되었다는 뜻이니 의식 창시자의 앞잡이 從者(奴僕)에 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삼세가 실제엔 있지만 그 아닌 없는 象[상]을 갖고도 그인 것처럼 꾸며서 행세하게 할 수 있다는 뜻이니 前現未[전현미]에 너가 뭐이고 뭐일 것이라는 것은 하나의 허상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뜻이다. 따라서 그에 부수적으로 따른는 여러 모습의 행위(*진행과 결과 줄거리 연출 무대 부소품등 따위)는 없는 것이니 신빙할 것 없다는 것이다 일예로 저 고양이가 차에 치여 죽은 것은 전후세 어떤 남을 치여 죽인 주체가 아니므로 응보적 성향도 부정된다는 것이다 그런 줄거리나 연출은 어떤 목적을 가진 자가 꾸며 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니 그러므로 무엇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는 또는 될 것이라는 허상의 결과론은 소멸된다는 것이다 혹이 설령 의도적인 염원 악의에 찬 바람이나 자기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한 염원이라 할지라도 그것은 이뤄질 수 없는 假相[가상]에지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또한 그러므로 써 일체의 마음에 부담을 갖는 업장 윤회 논리는 없다에 도달케 되었다. 그러므로 또한 어떠한 행위를 하더라도 전세 업이란 것을 벗을 것도 없고 나중에 벗을 업을 짓는다 할 것도 없다 에 이른다 할 것이니 그냥 행위를 하는 것은 향락의 차원일 뿐이니 그것은 곧 염증만 없다면 극락의 경계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것은 다 마음에서 일어나고 마음에서 숙진다 할 것이다 일체의 나쁜 의식을 갖게되는 것은 소멸된다는 것이니 강아지를 어떠한 심적인 형태로 던지 때려 죽였다 그 원귀란 것이 때려죽인 자의 태중에 들어가서 자식으로 태어나서 복수전을 벌인다 한창 예쁘게 자라다가 험한 꼴로 죽어 보여 속쓰리게 하는 것 따위의 논리는 모두 거짓으로 공포를 자아 내게 하는 사람의 마음을 다치게 하는 制度[제도]법이니 앞에서 하인이 설파한 논리대로라면 모두가 파괴된다는 것이다 즉 어떠한 흑백이나 양비론이나 곡예의 기교를 부리는 논이나 흰 비단 깊에 얼룩 문늬 수놓는 논리등 多比 多乘的 論理[다비 다승적 논리]는 모두가다 거짓 일궈낸 논에 불과 할 수 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악이란 개념을 부추기려는 것은 아니다 악이란 개념 또한 마음에서 모양을 만든 것이니 그 모양을 악이 아닌 걸로 한다면 악이 아니니 여기저기 널린 쇠똥은 사람은 협의를 둘지 모르지만 쇠똥벌레는 자기의 먹이요 소일거리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악이라 정의 지을수 있는가 말이다. 저-나무를 베여죽인 것을 악이라 할게 아니라 그 지은 모양의 진가를 발휘하는 것이라 한다면 베지 않을까 안달 할 지언정 베었다고 恨[한]하진 않을 것이니 이러한 변재 논리라면 일체 무슨 행위를 하던 마음에 부담은 소멸되니 어떠한 해탈 껍질이 역겨운 게 있을수 없으며 마음이 창천의 청아함 같다 할것이니 하나도 구애의 눈으로 볼게 없는 모두가 아름다운 화려한 모습으로 보인다 할 것이다 악의에 찬 모습 , 원성에 찬 목소리, 원망의 눈초리, 실의늪에 빠진 모습, 과격히나대 실태한 행위, 질곡등, 이모든 모습이 벗는 탈상이 그렇게 지어져 보이는 것이지 그것이 좋고 나쁜 탈상이라 하질에 눈 (*말이 하질에 눈이다)으로 가름할게 아닌 것이다 또 무슨 업의 탈상이 아니라 일종의 향락을 짓는 모습으로 비춰 보일수도 있다 마음이 달가우면 물구나무를 세워도 단잠을 이룰수가 있듯이 의식이 문제라는 것이니 입장이나 견해를 달리하는 자의 생각도 하라하는데 그러한 것도 또한 마음의 의식 모양상이라는 것이니 相[상]을 떠난 의식에 自他(자타)등 무엇이 있어 의식하고 어느 것만을 가려 그것이 좋타고 골라 담겠는가? 이런 뜻이다 마음만이 남는 마음이라는 것이다 제상이 무량보배 자기가 취향 하는 상이라는 것이니 마음에 두둥실 우주가 떠 있을 뿐이다. 혹이 말하길 자기의 향락을 위해 남을 害[해]하는 것 같은 것은 어떻게 辨在(변재) 할 것인가 한다면 말이 남이란 모습이지 相[상]을 떠나면 무슨 구별이 있어 의식할게 있겠는가? 하리로다.
*사람의 성격은 환경의 지배를 받아 형성된다.. *사람이 주위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으니 그 사람의 성격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할 것이다 성장기에 오랫동안 억압을 받는 처지가 되어 심상의 발육상태가 보통보는 관점으로 양호치 못해서 머리에 주입해 들어오는 것마다 정상적인 상태라고 보기 어려운 (*가련 씁쓸 초라 비애 불쌍등의 상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 심적인 불우함 속에 있었다면 활달한 성격이 조성되기가 여간 힘들다 할 것이다 (*혹 그럴수록 반발해서 그에서 벗어나고 싶은 심정 그렇치 않은 것처럼 딴판의 행동 자기의 단점을 커버하기 위해 어떻게 하게 된다는 반대의견도 가질수도 있다.) 또한 생각하는 것조차 여너 사람들과 다른면이 있어 바르다하는 가치관을 갖고 있다하는 보통사람들이 보기에 샛길로 가는 것처럼 여겨 질수도 있다할 것이다 그는 왜 그런가? 무형의 압박을 가해오는 피해의식 현실처지에서 벗어나고 싶기 때문이다 심은 여리어 쪼글아들고 용기는 물러가고 한껏 주늑이 들어 있다면 평소에 억압의존재 태산북두처럼 두려운 존재로 여기던 자가 또다시 자기 앞에 닥아 온 다면 자라보고 놀란가슴에 솥뚜껑보고 놀란다고 그자가 또 친압하려 드는 것같아 콩닥거리는 마음에 어떠한 궁여지책도 떠오르지 않아 노리받아 발자국도 떼지 못하는 매밥 신세와 같아 진다할 것이다 즉 이렇게 된자에겐 최면에 걸린거와 같게되어 가성체가 들어올 여지가 많다할 것이다 또 궁한쥐가 되려 고양이를 물려한다고 대어 들어 발악도 해보고싶은 심정도 든다할 것이다 즉 그것만이 아니라고 거부반항 콩알 낱알 깍지에서 튀어 내빼듯 멀리 떨어져서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독특한 이상세계를 구축해보고 싶은 것이다. 남을 용기를 북돋아 주지 못할 망정 그 처한 처지를 이용하여 억압하려드는 것은 나쁜 것이다 그런 밑에 있었다면 똑같은 상황이 재차 형성되니 흡사 엄한 십장밑에 일하던 일꾼이 십장될 기회를 갖는다면 더 무섭게 나댄다고 폭력은 자기가 받은 것에 대한 보상을 받기위해서 점점 커진다 할 것이다 성격은 완악 해지고 거칠어서 어떠한 법상 (*제도하려는 깨달음에 말씀 및 그에 따른 행위) 으로도 다룰 수 없는 경지에 까지 이른다 할 것이니 도태시키지 않으면 안될 버림받은 자가되던가 약이 오른 땡비 잡다 놓친 범 기승을 부리는 것처럼 되어 진다 할 것이다. *저-태산이 노쇠하여 무너지면 해방되었다는 기쁨에 앞서 그 호기롭던 기세가 어디로 갔나 하는 가련한 심정에 억압 받던 그때가 도리혀 그리워질지 모르리라. 태산이여- 다시 일어나라! 그 위세를 다시 한번 떨쳐 보여라 장한 그 모습 다시 한번 보고 싶구나 할지 모르리라.
* 悲哀(비애)란 뜻의 정의를 내린다면 구걸하러 온자의 쪽박을 깨는 것을 그 구걸자의 입장에서 비애라 할수 있다. 하늘 명분 달길 즐기는 사악한 귀신 즉 사탄이 이러한 형상을 꾸며서 사람의 마음을 잘 후려 치는데 대체 그 구걸하는 자가 어째서 제 모습이란 말인가? 얻어먹으러 왔다가 (* 소위 제 이상을 펴려 왔다가) 그렇게 못하게 시리 쪽박을 깨니까 앙심을 품는 모습이 그렇게 꾸며 보인다는 것이니 아주 야비하고 몰염치하고 더러운 개뼈다귀만도 못한 귀신의 무리들인 것이다. 정상적인 사람의 마음이 측은 동정 지심이 있다는 것을 제 목적에 더럽게 이용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도 하나의 지혜라면 지혜라 할 것이다 길가에 앵벌이 하는 자를 여기서 말하는 것은 아닌 것이다. 그 걸인은 아무리 사탄이 제 모습이라 우기지만 사악한 귀신 즉 사탄이 떨어져 나간 참모습의 걸인일 뿐인 것이다. 만약상 계속 제 모습이라고 우기면 그런 모습을 제 목적을 위해 조장시키는 것이니 더욱더 저들의 주장을 배격해야 한다 할 것이다. 즉 사탄이 주술하길 세상은 병들어라- 계속 내 모습이 생겨나라 함인 거와 같을 뿐인 것이다.
*인간사 어지러운 것 무슨 말을 할까?만은, 저가 항상 베풀 위치에 서길 바람에, 있는 것 다 주고 차라리 구걸하는 입장에서는 것이 뱃속 편안 삶일는지 모르리라 저- 원수같은 보살이 앙앙불망 은덕 베풀길 즐기고 구제하길 즐기는 것은 자기를 내 보일려는 한 수단과 방편으로 생각하니 '그래 너가 다 통반장 해먹어라 나는 차라리 일그러진 깡통을 들고 다니면서 문전 걸식을 할망정 더러운 인간의 위선과 탐욕에 물들 지 않으련다' 하는 지 모르겠다. 어째서 자기만이 가진 자가 되어 베풀위치에 서겠다는 건가? 구걸하던 자도 좀 잘되어서 베풀 위치에 서고 도움 받은걸 갚을 기회를 좀 갖게되면 안될 게 뭐 있겠는가? 그렇게 클새 없이 닦달을 내고 참지 못하고 턱을 괴이듯 줄 때를 바라니(*귀신이 조금 도와주고 생색내어 십일조 바라듯=* 이것이 무조건이 아니라 전부다 조건에 걸린 고기가 되어 서로가 턱을 고이고 있으니 그것이 또한 인연이라 한다 유조건이 유주상 보시와 같아 질 부담이 없어 좋다하겠지만 계속 업을 짓고 벗고 연속이니 윤회라 하는 것이다=*이것은 늪에 뿌리박고 계속 피는 연꽃과 같다, 무조건이 무주상 보시와 같아 귀신 끄러잡아 종삼겠다는 뜻이니 그 잡혀오는 귀신이 원수만 여길지 몰라 영원성이 없고 또한 망신살이 뻗치게 되는 지도 모른다 할 것이다 이것이 담는 그릇과 같아 하고 노는 꼬락서니를 얼비쳐 담는지도 모르고 중생이 어떻고 등 득달한 지위에 있는 모습인체 한다는 것이다.)기회 있을 적마다 찾아뵈어 너 도와준 은혜에 평생동안 갚으라는 듯이 하니 은인이 아니고 원수가 되어있다는 것이다. 누가 말하길 은인도 자주뵈게 되면 허리 굽히기 지겨워서 원수처럼 보인다고 하듯이 때가되고 시가되야 내보란 듯 내보일텐데 보리 갈아 놨는데 와서 계떡 내 놓으라 하는 거나 진배없으니 귀신의 목메여 옴도 여간 애닲은 게 아니고나 하는 생각이 든다. 여간 목이 타면 그러겠나만은 그 거들먹 거리던 시절의 호기는 다 어데로 가고 낡은 마대 가죽처럼 되어가지 곤 그 옛날의 은덕을 돌아보라는 듯 저가 내가 아니면 어찌 컷겠는가? 내가 이렇게 모두를 위하여 회생했는데 결국엔 나만 못살게 되었다는 식의 애성에 받친 부성을 늘어놓으니 그 가련한 신세 누가 알아줄 것인가? 그래서 부유함이 항시 그런게 아니니 있을 때 잘 간수해서 어려울 때를 대비하라는 옛 철인인의 말씀이 있는 것이다 허상에 빠져 모두를 다 탕진하고 나선 모든 것을 어떠한 탓으로 돌린다면 돌봐 준 자의 성의가 무색하다할 것이리라. 한참 잘 돌아 갈적엔 제 능력이 있어어서 인 줄 알고 또 제 추종하는 이상귀신의 은덕인줄 알고 감지덕지해서 그 귀신의 무리의 꼬득임에 흩찰리해 버리고 이제 거덜이 나서 쪽박을 차고 있다 싶이 하고 있으니까? 제 어리석음은 모르고 여타의 탓으로만 돌리니 그것 또한 운수소관이라 할 것 아닌가?... 오호라! 참으로 불쌍타! 아니하랴? 이제라도 다시 한번 일어나 옛날로 되돌아가 호기로운 호령한번 해보라.... 그 기승을 살려주기 위해 내 한껏 주늑이 들은 모습을 다시 한번 보여주리라. 구천이 회계의 치욕을 씻기 위하여 까시 섶에 누워 쓸개를 빨았을 적엔 원수이기고 패자가되기 위해서였나니 갖은 굴욕을 참는 자도 다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또한 은혜가 되려 원한덩어리를 안긴 꼴이 되잖겠는가? 그 은혜 베풀미 참마음에서 우러나온 것에서 한 것이 아니요 남을 야시보고 거들먹거리는데서 나왔기 때문에 그런 모습으로 귀결지어 졌다 할 것 아닌가? 이런 나의 諮問[자문]이다.뭔가를 자랑하는 이는 언젠가는 그 탐하는 이에 의해 시험받게 된다는 것을 알라는 현실세상의 돌아감의 가르침이다. 그래서 있어도 있는 체하지 말고 없어도 없는 체 하지 말라는 가르침이 있으니 그 우물이 깊이를 몰라 두레박 끈을 어떻게 맞출지 모르게 모습을 짓고 있으라는 것이니 이언해서 종잡힐 틈을 주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것이 발각되면 표적이 될 것이니 어찌 포로가 되지 않는 다고 보장할수 있겠는가? 이런 나의 말씀이다. 남이 속속들이 다알고 나면 利[이]속 다 빨아먹고 낡은 껍질 내동댕이치듯 할 것인데 어찌 혁대끈 양말 속에 감춘 비상금을 마누라에게 들키듯 허술하게 대비할 것인가 내 말은 그런 뜻이다. 그러므로 마음의 문단속을 게을리 말라는 것이다. 도둑질을 하여도 컽으론 안그런체 태연자약한 모습을 취하라는 것이다. 또 성인군자인체 행세 하라는 것이다. 그래야만 어지러운 세파를 헤쳐나가는 한 방편이될수 있다는 것이다.
*그대의 원대로 될지어라 이다. 내 처지가 너만 못하여 구걸하는 입장이 되고 네 처지가 항시 좋아서 베푸는 입장이 되길 원이라면 그 원대로 되어라는 것이다. 어리석은 중생이 보살처럼 행세코자하나 양쪽 모두가 실로 그 이름만 보살일 뿐이나니 그러한 모습이 왜 생겼나는 생각지 않고 우선 자기의 입장만 합리화에 몰두하고 있는 것이다. 측은 동정지심을 유발케하는 주체는 마귀가 그 형상을 원해 제집을 짓고자 하는 것이지 참 깨달음의 주체 가 있어 그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自他(자타)等(등) 제것에 心狀(심상)을 傷[상]코자 하는 것은 득달의 바른 과정이 아니라 할 것이니 그렇다고 짜릿한 쾌감만을 요구하는 것 또한 참 득달의 바른 과정이라 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하면 傷[상]한 심상을 치유하고 아무런 걸림 없는 평온함을 되찾느냐? 이가 諸(제) 가르침의 과제라는 것이다 功名(공명)에 눈이 어두우면 허세를 부리게 되는데 이게 병탈이라는 것이다 속빈 강정 곧 터질 것만 같은 부풀린 풍선처럼 되어도 계속 허세를 부리는 것이다 사회집단에선 이것이 큰 병폐를 낳으니 몸을 망치고 가산이 탕진되고 기업과 단체가 도산 病(병)이 들고 나아가선 나라의 뿌리전체가 뒤흔들리게 되는게 바로 이 허세인 것이다 밥짓는 솥까지 날릴 위기에 처해 있으면서도 석달 먹을 양식이 있는 것처럼 행세한다면 허세가 극에 달해 있는 모습이라 할 것이다 .이러한 허세를 부리길 좋아하는 자가 측은 동정지심의 母胎(모태)가되어 남을 자기만 못한 입장으로 처해 있게끔 원을 하는지 모른다. 즉 내 베풀어 우쭐대는 맛을 보기 위해서 너는 항시 구걸하라는 것이다. 가증스런 그 얼굴에 침을 밷고 싶지만 그것이 참인지 아닌지를 식별치 못해 가만히 있을 뿐이다 왜냐 하면 참이면 이 훌륭한 행위를 시기하여 헐뜯고 욕보이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늑대 이빨경.*하인이 말하길 = 제게 불리하고 남에게 유리한 事由[사유]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빙자 멍애를 진 논리를 전개하고 자기에게 유리하고 여타에게 불리한 事由[사유]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歸着[귀착] 이론을 정립하려드는 것은 순전히 獨善 利己[이기 독선]의 극치라 한다. 즉 짜맞춤 合理性賦與 作成[합리성 여부]이라는 것을 하나의 利己的目的[이기적목적]의 도구 수단으로 이용하려드는 것이니 知識[지식]이 도리혀 人性[인성]의 황폐화를 가져 오게하는 사악한 폐물로 전락하였다는 뜻이다.
*사람이 남[他人(타인)] 하는 말씀에 순응하는 마음이 안 들고 귀에 거슬리게 들리는 것은 왜 그런가 그 잘난 체 하는 꼴이 배알이 뒤틀려 보이기 때문이라 할 것이니 보는 자도 문제가 있다 하겠지만 그렇게 보게 하는데도 문제가 있다 할 것이다. 하인이 칼럼시간에 나와 사랑 운운 하면서 일가견을 피력하여 자기의 주장을 펴는데 내귀에 거슬려 들려서 이렇게 한 말씀 아니할 수 없어 해보는데 소위 사랑이란 대체로 뭐말라비틀어진 말이란 말인가? 사랑이란 한낫 좋게 둘러대는 입에 발린 말이요, 욕망의 충족 이기적 발로에 모든 事件[사건]과 事相[사상]이 있는 것이다 즉 僞善[위선]에 의해 모든 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서씨나 양묵에 오염된 무리들이 툭탁하면 사랑을 말하나 이는 순전히 제 욕망해소 차원에서 도구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한 말이지 그런거 없고 오직 利己性[이기성]에 의한 욕구충족을 시키기 위해 모든 것이 벌어져 있게 되있는 것이니 이 모두 탐욕과 위선 덩어리일 뿐인 것이다 이렇게 저 잘난 체 하는 게 눈꼴시려 하인(*집필자)의 생각이 편벽 되게 굴러가는 것은. 감각에 의해 마음이 동해 굴러가지 않을 생각도 굴러가 주절되게 됨인 것이니 누가 뭐라던 귀가에 바람을 지으면 그만일 텐대 그렇치 못하고 물고 늘어지는 소견하곤 밴뎅이 소갈머리만도 못하다할 것이나 몸둥이가 껍질에 불과 하고 그에 의지한 마음조차 껍질인데 한낫 거기에 의지하여 나오는 생각과 말이 껍질이 아니고 뭔가? 그러니 위선일수밖에....이런 나의 뜻이다. 무엇이 알짜가 있어 진실되고 위선이 아니라 할 것인가? 내 말은 그런 요지다 모두가 다 이 껍질 탈 일뿐이니 그 벗어치우기 위해 무던히도 갖은 상을 다 궁굴려 보는 것이다. *뭔 이치를 설명할렴 궁금한 점이 없게 해야지 허리를 부러트려 중간서부터 말하면 그 반쪽에 대해선 모르니 궁금하기도 하겠지만 그 理致[이치]라는게 미심쩍고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할 것이다 하인은 이런 것을 배제하여 有無[유무]로부터 근본을 세워 해설 할려고 노력했음인 것이다 그 유무란 것이 근본이니 소위 아무러크소니 라는 것이다 그것이 허심탄회한 것을 서두로 잡던 원만하고 空[공]한 모양을 서두로 하던 원래부텀 壹[일]이라 하는 것이 있었다하곤 그 壹[일]로부터 서두로 하건 근본 미심쩍인 것이 없게끔 하는 것이 집필자의 근본 指向[지향]일진데, 그러다 보니 해설이 길어지고 가짓말(*枝語)이 많게 되는 것이다. 이를테면 여기 한자되는 실끈이 있다 이것이 우주생긴 이치와 여러가지 의문나는 점을 설명하는 緖頭(서두)라 하면 그것이 아무러크소니라는 것이니 설명만 이치에 부합된다면 그것은 우주생김등 의문나는 점을푸는 근본이 될 수있고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떠한 끈을 반을 접어길이를 똑같이 맞춘다면 그것이 똑같다는 의미의 合을 갈구하는 것이라 한다면 합이 된 모습이라 할 것이다. 즉 그것은 합인 것이다 이것을 원만한 둥근 원을 구해보기로 하는데에 합을 찾는 것이라 한다면 그끈을 벌리던가 거듭 말던가해서 둥글게 놓으면 그것이 또한 합에 모양이라고 아니할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된 어느 끈의 지점을 기준하여 명분을 정한다면 그 상응하는 반대쪽은  이라 아니해도 충인줄 알수 있는 것이다 즉 아무데나 子점을 기준 설정해놓으면 그 반대되는 충의 지점은 午를 가르켜 주지 아니해도 午(오)인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설령 그 명칭이나 정하는 방식에 있어서 여러 가지형태라도 그 이친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만약상 전체가 다섯이라면 그 반은 이점오라는 것은 수를 배운자 치고 모르는 자 없을 것이다 우주는 이런 이치에 의해 설정되어 있는 것이다 무슨 별말 아닌데 거창하게 우주까지 들먹이느냐고 할는지 모르지만 우주가 별것인가 다아 이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속에 우주가 존재할 수도 있는 문제이니 우주라해도 큰 병탈 없다 할 것이다. 十二支라는 것은 우주형성이치를 설명하기 용이하게 사람들이 수적이나 명칭 명분적으로 그렇게 정한것에 불과한것이니 그것이 처음에 어떻게 생겼나를 궁금해 여길 필요는 없는 것이다 이렇게 설명타보면 절로 해설될 테니까 말이다 어떠한 끈을 한쪽 끝을 잡고 밑으로 늘어 트려보면 그끈은 축 늘어진다 할 것이다 그끈은 곧게 보이겠지만 실상은 곧지 않을수도 있다 즉 휘어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착안한 것이 바로 사시적 흐름이라는 것이니 이 사시적 흐름에 의해 우주는 생명입자가 형성되어 존재케 된다는 것이니 즉 대우주는 이러한 생명입자의 모듬체인 것이다. 사시적 흐름은 좌우 어느쪽의 형태던 여하한 모습이던 계속 돌아나가는 모습을 취하게 되있는 것이다 그것이 처음 끈을 잡고 있는 지점까지 한바퀴 돈 모습의 형태를 취하는 것을 원의 모습이라 한다 그렇다라도 그 끈은 축 늘어진 상태의 용수철모양을 그린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가운데로 내다보는 입장에선 엄연히 원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 원형의 입체적인 모습을 단면의 모습으로 생각하여 본다면 그것은 하나의 단면 원형이라는 것이다 이 단면 원형의 어느 지점에서 기준하던 子의 기준점을 설정하면 그 대칭은 午 가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우리가 가만히 생각해보건대 그 원만한 형을 대칭선을 중심하여 반을 나눠 원테를 끈이라하고 죽 펴서 서로 맞추면 그끈의 길이가 똑같아진다할 것이다 앞서 서두에서 설명했듯이 그 똑같은 것을 合(합) 의미를 渴求(갈구)하는 것이라 한다면, 합을 이룬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처럼 원형 같은 것의(*모든 사물의 형태) 午未中間[오미중간]과 子丑中間[자축중간]을 對稱線化(대칭선화)하여 접듯 맞춰본 것이 십이지지의 합론인 것이다. 그렇게됨 卯戌合(묘술합) 辰酉合(진유합)등은 서로 같이 모이게 되는곳이니까 합인줄 절로 알수있게된다는 것이다 즉 이상의 번복되는 모습의 설명이 우주의 無爲[무위]한 형상이라는 것이다 그끈을 또다시 접어도 같은 논리요 그끈을 다시 갈러 편다해도 같은 논리가 나온다는 것이니 나중엔 그끈이 짧아서 안된다 하질말고, 접은 마음에 끈이란걸 엿가락 늘구듯 고무줄 늘구듯 하면 안될게 뭐 있으며 너무 길어서 하기 거북스럽다하면 툭 잘라낸다해서 안될게 뭐있으면 둘둘 뭉치거나 뺏던 안테나 쫘르르 낌듯 하면 안될게 뭐 있겠는가? 이런 뜻이다 * 이상의 합과 충의 설명을 이상과 같이 해야 지만 우주생긴 설명은 줄 풀리듯 술술 풀려 나온 다 할 것 이다. *십이지를 반을 접은 것이므로 오미합 하면 그다음 사신합은 절로 당연한 이치가 되고 그 다음 진유합 또 그다음 묘술합 또 그 다음 인해합 또 그다음 자축합은 당연한 이치인 것이다 그것을 설령 자축합으로 부터 꺼꾸로 설명해도 그 이친 마찬가지라 할 것이다 즉 그렇게 해서 계속 연이어져 나가 그러한 것 여러게가 둘둘 뭉친 것이 우주라하면 우주라할 것이다. 그렇게 흐름이 합을 이뤄 나아가면 그 반작용이나 反象이 자연 있게되는데 그모습이 곧 圓의 공한 모습이라는 것이니 흐름이 새끼 꼬이듯 하는 어느 한쪽의 줄이라면 그 반상은 흐름과 짝하는 다른 한쪽의 따라 꼬이는 줄이 된다는 것이다. 그것을 空化하여 나타난다하여 (*즉 공간 형태), 흐름의 순서대로 나타난 공화의 모습에다 질서 있게 이름을 붙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天干 十干이라는 것이다 천간 십간도 흐름과 같은 논리에 의거해 干合을 짓게 되는데 즉 甲己合 乙庚合等類이다 혹자는 의문을 갖길 지지는 육합이되고 천간은 오합이 되니 그 짝맞음이 같질 않아서 흡사 새끼꼬임이 한쪽 줄은 길고 다른 한쪽줄은 짧아서 불안정한 모습을 취한다 할 것이나 그게 그런게 아니라 어긋남으로 인해서 시차등 정체나 지체 현상이 일어 우주가 현상한다 할 수도 있겠지만 육합 흐름이 만든 안에 공화 현상이 인다는 것이니 즉 午未를 天干공화의 마무리 점으로 같이 쓰게된다는 논리이다. 이를테면 여기 어떠한 탄력을 가진 용수철이 하나 있다한다면 그안에 가득 찬 것이 空化(공화)라할 것인데 그흐름의 시작 바닥점이 자축이라 한다면 공화의 모습 甲己土點(갑기토점) 또한 支支子丑(자축) 土點(토점)을 그음으로 부터라는 것이니 흐름과 거의 같은 바닥 점이되나 흐름이 午未(오미)에서 한단계 마무리점이 된다면 그전 巳申水點에서 공간 戊癸火點이 같이 올라서게 되고 마무리점은 흐름 오미점을 같이 쓰게된다는 뜻이니 易言해서 다섯칸을 만들기 위해 칸막이를 여섯번 긋는 이치와 같다는 것이다. 항시 그러하니 먼저 그은 것을 시초의 언덕을 삼으면 그다음 또 다섯칸을 만든다 하더라도 또 다섯 칸막이를 그어야 한다 할 것이니 먼저 그은것과 합해 역시 여섯이 되는 것이다. 이것이 수학 공식과는 차이가 있을진 몰라도 좌우지간 그렇게 해서 우주는 형성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논리에 의거해 동양 음양 오행학의 제법칙이 있게 되는 것이니 음양 오행론이 우주형성을 말한 이론으로서 허황한 哲理[철리]가 아닌 것이다. 즉 우주는 육갑에 의해 있고 作反[작반]의 음양에 의해 있으며 그생김이 절로 그러한 오행에 의해 있게되는 것이다. *오행의 생김이 왜 절로 그러한가? 흐름에 의해 공화를 짓다보면 오행의 질서가 절로 그렇게 정해 진다는것이니 그것이 무슨 爲的[위적]으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니다 즉 六 一 四 二 三 五,로정해지면 反相空化는 逆으로 五 四 一 三 二 六 이되는 것이다 六은 地支午未 日月이고 一은 巳申水가되고 四는 辰酉金이되고 二는 卯戌 火가되고 三은 寅亥 木이되고 五는 子丑 土가 되는 것이다. *이상의 숫자는 오행에배치된숫자이니 土로부터 차레대로 수자를 말하라 한다면 五 四 三 二 一 六 이공화의 모습이라 한다면 흐름의 숫자순서는 六 三 四 一 二 五 란 뜻이다. (*여기서 오미를 육이라한 것은 숫자를 그렇게 붙쳐 본것이지 육이란 숫자가 오미에 배당되는 것은 아니고 기다란 막대 양끝의 한쪽을 가르키는 명분의 수일 뿐이니 소위 토점에서 다음 거듭되는 토점을 가르키는 숮치이니 이상하게 생각할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즉 오미 일월 토점을 다시 자축 토점으로 생각한다면 또다시 여섯 번째가 오미 일월 토점이 된다는 것이다.) 말꼬리를 (참고 문장) 앞으로 돌려* 이를테면 한자되는 막대가 흐름이 공화된 모습이라 한다면 원래 흐름이 허심한 공화를 대신하여 그렇게 흐른 것이라 하다면 그한자되는 막대는 흐름以前의 공화의 허심한 참모습이라(*말이 그렇치 이전 이후의나눔의 공화는없다 다만 설명해서 주지시키려다보니 그렇게 서술되었을 뿐이다) 그순서가 어느한쪽에서부터 절로 연달아 생의 이치가 맞게되있어서 있는 모습인것이니 처음 대한마디는 그다음마디 생하게하는 이치에의거해 있어 모든 대마디가 차례대로 있는거와 같다는 것이다 즉 절로 토생금 금생수 수생목 목생화는 정해져 있다는것이니 어디 일부러 뜯어 맞출려 해서 있는 것은 아니란 것이다. 다만 사람이 그生의連繫되는 순번의 명칭을 그렇게 정해 놨을 따름인 것이다 이렇게 공화의 오행 생의 연계가 이어지므로 인해서 흐름의 오행순번은 흡사 뒤죽 박죽처럼 지어져 보이는 것이나 그것은 뒤죽박죽이 아니라 엄현히 그렇게 정해져야할 哲則 이되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흐름의 생의연계를 만들겠다면 허심한 공화의 모습이 뒤죽 박죽이란 뜻 아닌가? 만약상 흐름이 순생 오행이 정립된다면 공화의 중간의 모습이 꼬리라 할텐데 그 이치가 성립되겠는가? 여기 수박이 있다 알속먹을수 있는 부분을 수박 겉 껍데기라 한다면 원 별미친 정신나간 사람이라 할 것이다. 지금 하인이 수박속을 수박속이라하고 수박껍질을 수박 겉 껍질이라하는데 하는말이 어렵다고 이상하게 여긴다면 어떻게 다른 말을 더할수 있겠는가?....이런 내말씀이다. .
* 석씨 말과 같을는지 모르지만 우주는 하나의 이치로 형성된건 아니다 따라서 하나의 이치로 설명 될 것도 아닌 것이다 각자 깨달은 바에 따라 말하게 되는 것이니 그렇게 주지하고 있는걸 같다 여타에게 아르켜서 이해 시킬려 드는 것이다 소위 동패류로 만들어 자기의 깨달은바를 넓리 세상에 펴 볼려 함인 것이다 어떠한 과학적 지식으로 또는 방법으로 깨달았던 그 또한 자기가 알고 있는 하나의 覺性(각성)體(체)라 할 것이다 * 하나의 진리라는 것 굳이 제 뜻에 부합 되야 한다는 것 (*즉 일합상)이런 것에 의해서만 세상이 형성 된 건 아니므로 즉 이런 것은 일부분에 불과하므로 삶이 여의치 못하고 추구하는 게 어긋남이 많은 것이다. 모든 게 제 뜻대로 된다면 그것이 일합상인 것인데 어찌 제뜻만 세상에 있어 그와 같이만 되겠는가? 달가운 면은 얼마 안되고 쓰거운 면은 널려져 있는 것이 세상게 전부이면 전이요 그아니라면 아니라 할 것이다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겠지만 비위가 뒤틀리는 感識體[감식체]가 널려져 있는데 어찌 긍정적인 사고만 하고 있을수가 있겠는가? 이런 말씀이다 세상은 하나의 이치로 이루어 진 것은 아니므로 제자백가의 사상과 이상이 있는 것이며 또 그와 같다고 유혹에 손길 같은 법리 아닌 법리, 법칙 아닌 것 같은 법칙, 원리 아닌 것 같은 원리, 의 논리 전개가 있어 혹여 그런 것처럼 깊이 빠지게 해 그릇됨으로 끌고 가는 수도 있다는 것이다 또 혹은 자기의 생각하는바와 자기의 운명이라는 게 일치하는 수도 있어 크게 발전이 오는 수도 있다 할 것이다 이것이 곧 입신이요 양명출세요 또는 크게 튀지는 못하지만 삶을 꾸려나가는데 크게 어려움에 봉착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게 되는 것이다.
*앞서 육합론과 육충론에서 말했듯이 줄을 벌리던가 둥그렇게말아놓던가하면 원이된다 그 원의중심에서 사방사유로 갈러보는게 팔방론으로서 여기다가 팔괘를 배치분포해 보는 것이다 이팔괘론은 육합이론 삼차원현상의 번복이론에서 나왔다 봐야 할것이니 앞서 설명한 오행설정되는 것이 절로 그렇게 정해진다 하였으니 이것을 입체공화한 것이 삼차원의 모습이요 내면을 꺼내본 것이 팔공 팔괘의 모습인 것이다. 단면으로 설정된 오행론을 입체화 시킨 것이 삼차원 육합의 모습인것이니 소위 오행중 금목선상의 대칭선을 갈러 면적이되게하고 수화 대칭선을 부피선을 삼은 것이 곧 입체공의 모습을 띈 형상인것인데 여기다가 일월오미와 자축토를 단면으로 볼적에 중앙에 있는 것을 꺼집어내서 형상화한 것이 간토 곤토 양토의 모습이 되는 것이다. (*혹 일월화토를 원의 외곽이라하고 자축토를 중앙이라고도 할수있으나 이는 보는자의 심상에도 달렸다할 것이다.) 이렇게되니 팔공처의 팔방위가 이루어지게되는것이요 그렇게되면 또 그사이에 육합이 설정되어 있다는것이니 끈임없는 流動換態 變化 모습이 대우주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줄 끈으로 논할진데 艮土는 돌아내려간 토라 한다면 坤土는 다른한끈의 돌아 올라오는 시발점이된다는 것이다 즉 줄끈을 잡고 있는 손끝은 日月 午未란 뜻이다. 易言해서 새끼꼬임의 한쪽끝을 잡고 있는곳이 손으로서 일월이라 한다면 축늘어진 끝부분이 간곤토 가된다는것이니 이를 단면으로 놀적에 양분화하여 간곤토로 놓게 되는 것이다. {艮坤土를 八空處를 대변하는 모습으로 본다면 다른 것은 三次元座標 六合의 모습이니 十四等分 三點五角 立體圓形을 말한것이라 할 것이다 따라서 십사등분중 어느조목을 지칭하더라도 그것은 四等分(八空處)의한모습이나 三等分(三合處)의 한모습으로 지칭하는것으로도 볼 수 있다 즉 둥근 사과 반쪽을 時로 볼적엔 三, 空으로 볼적엔 四, 로 볼수있다는 것이다 만약상 혼합된 것으로 본다면 三點五角둥근 사과반쪽 겉모습(*중앙을 위시해서 그주위상)이라는것이다} 하인이 생각을 그렇게 굴려서 그렇다고만 하질 말고 잘새겨 생각해 보란 뜻이다 그러면 세상의 생긴이치를 선현께서 깨달으시고 그렇게 팔방위를 정하고 각곳에다 팔괘를 설정 정립하고 오행을 배열한 것이 억지로 뜯어 맞추고 자 한게 아니란 것을 알수 있을 것이다 동서남북의위치 또한 일부러 그렇게 사람이 인위적으로 정한 것이 아니라 절로 공화의 모습이 그러하다는것이니 지구 땅덩어리에 국한하는 말은 아닌 것이다. 물론 그 명칭은 수레이고 소 말 이고 등 지목하기 위해 사람이 정했다 봐야 할 것이나 동이 돼야 하고 서가 돼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정한게 아닌 것이다. *이렇게 원리에 의해 우주는 있는 것이다 혹이 이것을 일합상을 구하는 모습이라 할 것이나 이것이 우주 생긴 이치를 전체를 대변하는 것이 아니므로 한 골수에 빠진 모습이지 진리라 하는 모양을 드러 내려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저 혼자만 진리인체 한다는 게 우습 잖지 않는가? 즉 절대법은 존재 치 않으니 다른 것에 의해서 세상우주가 생겨 이렇게 여러 가지로 많은데 어찌 제혼자만 우주 창시자라 할 것인가? 이런 뜻이다 하인의 글 아무러크소니 에도 있지만 제집이라 할 게 하나도 없으니 싫증나면 중이 절을 떠나듯이 팔아먹던가 해서 안살고 다른데로 가버리는 수가 거의 다 싶이한 것이 세상 만물사인데 고집부릴 게 하나도 없는 것이다 제가 지은 것도 이런데 남이 지은 것이야 말할 나위랴 떡을 먹다 맛없으면 버리고 다른데로 옮겨가는 게 인지상정 사물의 동태인 것이다 물론 개중엔 절개와 지조를 지키는 것도 있다할 것이니 그것은 그것대로 또 맛이 있다할 것이니 그맛도 오래되면 퇴색되어 변할는지 누가 있어 알겠는가? 이런 말씀이다 *팔괘가 그 방위에 그렇게 정해지는 설명은 아무러크소니 왜 그런가장 보충 설명해논 것을 보면 자세한 것을 알 수 있다 할 것이다
* 동서 귀신을 막론하고 어떠한 이상을 추구하던간 사람의 심리가 약하던걸 알고 갖은 가련하고 불쌍한 모습을 일으켜서 동정을 갈구해서 自理想[자리상]펼치는데 도구로 이용하려 드는 것은 악질적 인 악마 사탄의 농간일 뿐이지 무슨 제대로 된 이상으로 여겨 추앙할만한 것이 못된다 할 것이다. . 일체의 나쁜 상태가 일어나는 것이 다 아 이 못된 귀신들의 희롱 놀이라 할 것이니 거기에 빠져들게 없다는 것이다 귀신이 덫을 놓길 우물에 어린애를 밀어 놓는 형국이라도 쫓아가서 구하려 들지 말라 는 것이다 이것이 너무 가혹해서 내가 어떤 말(종노릇한다는 조롱썩인 말)을 들을 지언정 가서 구해서 부처보살의 참모습을 보여 주리라 한다면 귀신은 바로 그런 것을 노리고 있는 것이니 필자의 말이 한쪽으로 치우친 것 같지만 일체 그 꼬득이는 상에 넘어 가지 말라는 것이다. 모든 병란과 전쟁과 천재 지변이라 하는 것과 불의에 사고 라 하는 것과 모든 사악한 현상이 이(*生起)는 것은 모두가 다 귀신의 작란이니 일체 그 하는 일에 동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갖은 어지러운 상과 사건이 터지게하여 거기에서 일어나는 갖은 불쌍하고 가련한 모습이 생겨 나게 해서 그것을 제 이상추구의 수단으로 이용하려 드는 것이 귀신들인 것이다. 그 귀신이 覺性의 思量體로서 어떠한 거창한 명칭(*하나님 하느님 성자 불보살등)과 명분(*천당 극락 구제 보시 착하다하는 뜻)을 달고 있던간 하잘것없고 간휼한 귀신에 무리에 지나지 않으니 거기에 속어 넘어 갈게 아니라 는 것이다. 사람에 마음에 잠자고 있는 측은 동정지심이 일어나게 하는 일체의 모든 행위는 마귀가 하는 것이니 그에 속지 말라는 것이다 오직 强性이 발하는 구호와 외침 선전 선동 이런곳 속에 인간이나 세상을 진취적으로 이끄는 형태가 그려 지는 것이지 죽치고 서글프게 하는 것엔 氣가 썩 죽을 판인데 무슨 진취적인 모습이 있겠는가 이런 내 말씀이다. 그러므로 강폭 하게 나대야 한다는 것이니 저- 폭탄이 터져 꽝-앙! 하는속에 진취적인 모습이 있는 것이니 사람에 마음도 이처럼 다구쳐서 강성한 쪽으로 몰아 부치듯이 내 끌어야 한다 할 것이다. *또한 그러므로 마구 두들겨 패주고 두둘겨 맞는 속에 강성이 형성된다 할 것이니 원한과 저주가 난무하는 난장판 마구 짓이기는 도마위에 고깃덩어리처럼 마구 다구치고 또 제장치기로 넘어가듯 하는 곳 속에 발전이 있다는 것이다 땅의 백성들이여-! 모두들 떨쳐 일어나라 ! 적개심을 일으켜서 軍歌[군가]와 감격시대를 불러보자 목청이 쉬도도록 소리치자 ! 그 큰울림으로!, 저-동정을 울궈내고자 처량한 가락으로 하는 찬송하는 소리라 하는 것을 깔아뭉게자 끽소리조차 들리지 않게 하여 못된 귀신의 목을 조여 버리자 그저 귀신의 뱃다지를 시퍼런 창칼로 퍽 쑤시듯하여 혁파해 치우고 참인간의 본성을 내보이는 강성한 세상을 만들어 보자! 모두들 손잡고 함께 떨쳐 일어 나 -자-!. 훨 훨 타오르는 불처럼 사나운 폭풍처럼 굳세어라 금순이처럼 폭우에 의한 장강의 거세게 내닫는 물마루처럼.....세상의 유약한 상을 싹쓸어 버리자.....사나운 룡호처럼 날뛰어보자 함정을 만들어 저 잘났다하는 무리들을 거꾸로 쳐박어 죽여버리자 척살하고 참살 참수하고 사지를 찢고 능지처참 무시무시한 폭벌을 가해서 참혹한 모습 널브러져 저 처량한 자들을 제 도구로 이용코자하는 귀신의 무리들을 한껏 골려주고 골탕을 먹이자 마구마구 때려죽여 사람의 참모습을 보여주자 모든 것을 두둘겨 부셔치워 이상귀신들의 배알이가 확 뒤틀리게 하여 주자 일체의 가면을 쓴 무리들을 힘센 발로 콱 밟아선 껍데기가 툭-터져서 그 알속이 튀어나오게 그 거짓된 상을 쓰고있던 참모습 마귀 사탄의 모습이 어떻게 생겼나를 관찰해 보자 착하라 하는 저 아가빠리에 똥물을 한박아지 퍼부어 넣고 번드름한 설교하는 단상에 오물 세례를 주자 뒷구멍에서 호박씨 까는 저 무리들에게 앞구멍에서 호박씨까는 방법을 정직하게 가르켜 주자 온갖 감언을 팔아 혹세무민하고 사복 채우는데 정신이 팔린 저 개같은 무리들 간교한 무리들 배도 못뚫고 들어가는 욕이나 싫컷 하여 주자. 以上은 악에 받친 모든 말씀은 마귀허울 쓴 마귀아닌 사람의 하고 싶은 말일 것이다. 그 속을 들어 내보이는 참 말씀이라 할 것이니. 哲人은 말하길 인간의 진면목 心은 性惡(성악)에 발판을 두었다 한다 그저 안그런체 거짓상을 지어 보일 뿐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근본이 어디서 왔는가? 포악한 육식동물인 파충류 공룡에서 進化(진화)됬다고 본다면 善(선)한 체 僞善(위선)을 떠는 것은 하나의 假飾體로써 對相體(대상체)를 잡아먹기 위한 수단인지도 모른다할 것이다. 솔직하게 잡아먹으려고 잇 발을 드러내다보면 대상체 먹이가 어찌 가만히 있겠는가? 대응책을 강구 할 래기지 그래서 머리를 쓴다는 것이 엉큼하게 안그런체 거짓을 꾸며보이는 게 능숙하다보니 지금의 사람과같이 형태가 진화되었다고 봐야 오를 것이다. 이반면 이리나 승냥이등은 사나운 파충류종류가 우리는 속임질 하는 야비한 짓을 저주한다하곤 솔직하게 진화된 모습이 그런 몰골을 띄게 되었는지 모른다할 것이다. 눈을 달리하여 魔眼(마안)을 뜨고 보면 인간이 인간이 아니고 어느 만화책의 그림에서 본 것처럼 모두 사나운 짐승의 탈을 쓴 것으로 보일 런지는 알 수 없다 할 것이다. .
* 魔種이 말하대 사람의 심리를 잘 파악할 것이라 하니 사람들이 툭하 면 양심을 들먹이나 그것은 제뜻의 합리성을 부여하기 위해 들썩거리는 말이요 그 원래 없으니 석씨 말에서 따와 보는데 良心[양심]이 卽非良心[즉비양심] 이요 是名良心[시명양심]이란 것이다. 지금세상엔 지식인 계층에 속하는 자들이 어디 나와서 점잖 빼면서 앞세우는 말씀이 서씨 양묵의 즐겨하는 사랑 놀음에 말이니 이 모두 가증스런 입에 발린 말이요 저를 어떻게 좀 튀게 할려는 들썩거려 줏어 섬기는 말이니 그에 하나도 신빙할게 없고 귀기울일 필요가 없다 할 것이다 오직힘을 길러 제패함에 있으니 갖은 책략과 모략을 써서 현실 기존에 것 체제를 둘러업고 임금 천하하여 모든 것을 혼자 독차지하고 베푸는 너스레를 떠는데 진실한 인간의 면모를 보여 준다 할 것이다. (*이것이 참사람 악마의 본성을 드러내는 것이라 할 것 아니라 가면을 벗은 인간의 眞性品(진성품)을 보이는 것이라 할 것이니.)저들이 말하는 양심이란 것과 사랑이란 것이 모두 甘象[감상]에 탈을 쓴 악독한 까시와같은 무기이니 그들은 그런 것을 줏어섬겨 제 實利(실리)를 취하고 제더러운 욕망을 쟁취하는데 이용하고있는 것이다 가련하고 불쌍한 자를 도와주는 체 하면서도 실상은 제 실리에 이용하려드는 것이니 즉 그 불쌍 한 것들이 제실리 쟁취의 도구수단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쌍타하는 것이 저들에겐 되려 구세주요 생명줄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저 잘살고 영화하 누리겠다고 그러한 몰골 사나운 모습이 자꾸 생겨나라고 축원하고 있는 것이 그들이 뭔가 추진하고자하는 곳에 낱낱히 베어 있는 것이다. 일체 저들이 주장하고 있는 사람놀음에 동조하지도 말 것이며 넘겨다보지도 말 것이니 오직 사나운 투쟁 때리고 부쉬고 잡기 위해 함정을 파고 몰아넣고 잡아먹고 하는 것 속에 인간의 진면목이 숨어 있다할 것이니 마구 날뛰어 죽어보고 잡혀 먹혀보고 때려죽여 보자이다. 몽둥이로 마구 두둘겨 패서 저 대항하려드는 멧돼지를 잡아재키듯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어 이세상을 쾌락의 독안이로 몰아 넣자이다 그저 시퍼런 비수로 찔러 공포를 자아내서 벌벌 떨게 하자이다 짓눌리고 억눌려 있는 魔種[마종]같은 인간본성의 千年恨[천년한]은 이렇게 하고 싶을 것이다. 또 내세우길 인간의 본성 참자기 갈길을 제어해 막고자하는 서씨 사랑 놀음에 복수의 칼을 들자 우리가 빼앗긴 활동반경을 도로 찾아선 기세를 드날려 보자 , 사랑은 없다 오직 솔직한 남녀간 정분이 나서 합궁 할 뿐이니 먹고 기운이 나면 만물은 성욕이 난다 그 성욕해소 차원에서 종족 번식 차원에서 생체구조상 운우의 락을 즐기게 해놔서 그렇게 즐길 뿐이지 사랑이란 뭐 말라 비틀어진 뜻이란 말인가? 사랑없고 흥겨운 재미극락만 있을 뿐인 것이다. 이렇게 魔種(마종)은 세상 악랄하게 돌아가는 형태를 갖고 궤변 같지만 辯在[변재]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 그저 원수의 대갈통을 까부시고 그집을 파서 못을 만들고 그 무덤을 파서 시골이라도 꺼내 맷돌로 갈아 미수가루 타듯 해서 먹고 막가파 지존파를 뺌치는 폭력집단 인육을 먹는 시대가 바야흐로 당도했다고 매스콤에서 말하고 있다 이세상은 욕망을 쟁취하기 위해 무시무시한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이 다아 저들의 理想[리상]만 우월하게 여기고 남의 이상은 안중에도 없고 말살해 없애 치우고자하는 저 사랑놀음 즐기는 곳에서 나왔다 할 것이다 환상이 사랑 놀음을 쫓다보니 견물생심 눈에 쌍심지를 돋구듯 현혹하게 하여 놨는데 어찌 가만히 있을 것인가 덫에 걸리는 짐승처럼 함정에 빠져들어 한번 멋들어지게 살아보고 싶은 것이다. 그런 것이 세력이 커지면 장상공후 되지 말라는법 있겠는가? 도둑이 세력이 커지면 원래 대의 명분이 절로 생겨나서 改世(개세) 天下(천하) 舊態(구태)를 革罷(혁파)하게 되있는 것이다. 말을 잘하면 쓴 허물도 벗게 되 있는 것이 세상이치인데 하물며 아무런 허물될 게 없는 바에야 더 무슨 말을 할 게 있는가 이 말이다. 처음에 조짐이 모기 불 피우듯 한 것이라도 잘 붙으면 전 강산을 태우듯 시초는 별 것 아니더라도 기존의 질서를 혁파할 수 있게 되 있는 것이다. 만원 뻐스에 덩치큰 사람이 또 타면 다른 사람은 짓눌리듯 이 덩치큰 사람이 되어 기존의 잘 굴러간다 하는 만원 뻐스와 같은 세상을 짓눌러 비집고 들어가선 시공간간을 할애 받아선 제뜻을 펼쳐 보자 이다. 그래선 떨어 올려 보자이다 한때 혁명세력이 세를 얻음이 이와 같다 할 것이니 그 기간만큼 시간을 할애 받은 것이요 그 활동하는 공간만큼 할애 받은 것이 되는 것이니 다른 것은 일시적으로 정지된 상태가 된다할 것이다 마치 나무가 동면하듯 새로운 힘을 기르는 시기가 도래한 것처럼 말이다. * 어떻게 덩치큰 사람이 되는가? 믿음에서 생기는 것이니 떡을 똥이라 굳게 믿음에서 똥이 될 수 있듯이 믿음의 주체가 어긋남에서도 나난이가 나오듯이 그 파종만 잘하면 독거미 몸이 말벌이 생태를 보전하는 집과 먹이가 되듯이 그 믿음이 강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믿음의 주체가 어긋남에서도 이러 할진대 하물며 믿음의 주체 가 바름에서야 말할 나위랴 힘이 생길 수 있는 여건을 꾸미고 가꾸어서 큰 힘을 얻고 볼 것이니 힘을 얻고자 하는데는 부정과 정직 선과 악의 논리가 통치않는 것이니 이상과 같은 흑백논리는 힘을 얻은 자가 피지배자를 다스리기 위한 수단으로 지어낸 것이요 큰 힘을 얻는데는 큰 영향 없다는 것이니 惡(악)의 種子(종자)라하는 것도 肥沃(비옥)한 땅을 만나면 종자를 틔워 잘 자라듯 그 힘의 땅을 얻기만 한다면 세상 차지하기는 여반장이라 할 것이니 사소한 개인의 운명 따위는 접어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됬던 남의 굴뚝머리에라도 吉地(길지)가 될 만 하거던 격룡재혈 하라는 것이니 장상공후는 따논 밥상이라는 것이다. 갖은 풍수책 다뒤져 보고 땅을 두더지 뒤지듯 한 다면야 어찌 길지가 없겠는 가이다 무주상 보시 유주상보시 등은 하기 좋은 말이요 그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말이니 덕성에 말이라 할 것도 없으면서도 덕성에 말인 체 그런 말들을 하길 좋아하는 무리들이 괜스리 남이 잘되니까 미화해서 하는 말이요 그런거 없는 것이니 세상에 집쓰고 살면서 本意 有無[본의유무]를 제쳐놓고라도 동냥받이 오면 일전 있고선 동냥 안준자 몇집이나 될 것이며 그런 자들마다 다아 운복 터지는 자리를 얻게 된다한다면 풍수는 무슨 소용 있으며 吉地(길지)란 것이 또 무슨 소용 있겠는 가이다 이런 내 말씀이다. 그 다아 지배자가 피지배자를 길들여 부리기 쉽게하는 것속에 생겨난 세상사(*訓戒野話= 훈계야화)인 것이니 그런 논리에 현혹될 필요는 없다할 것이다 오직 책략과 모략을 쓰는 곳 속에 있는 곳이니 초나라 신포서가 말하길 사람이 많아 승세를 타면 하늘도 제어하고 하늘이란 것이 또한 승세하면 사람을 제압한다고 하였으니 승세할 자리만 얻는다면 누구나 시공간을 할애 받아 왕후장상이 될 수 있는 것이므로 남에 집 안방의 대들보에라도 쓸만 하거던 들보장이라도 지내라는 것이다. 풍수설엔 기운이 공중으로 떠간다 하기도하고 장법이 가지각색이니 나무에도 메달아 놓기도 하고, 아무 맨땅에 그냥 두고 발(* )로쳐선 탈골 되기만 기다려서 노루 장골뼈 숲에서 줏듯 앙상한 뼈만 추려서 장사 지낸다 하기도 한다하니 徒是[도시] 운복 받는데 알 수 없는 일이니 원수갚고자 하는데 무슨 일인들 뭣 할 것인가 이말이다 저렇게 해서 이렇게 해서 영혼이 편안히 되는 것인지 알 수도 없는 것이며 한가지 자기 법만 입에 발린 영혼을 편히 모시는 법이라 할 수 없는 것이라 사료되는 것이다 말인즉 선조의 영혼을 편히 모시고 어째고 운운하지만 다아 이 제 운수 터지고자 하는 수작일 뿐이니 그 가증스런 입에 발린 선조의 영혼 팔 게 하나도 없고 솔직히 행동하라는 것이다. 사람이 정직하면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꿀릴게 없다고 앞으로 양심 사랑 찾고 뒤가 쿠리다면 가증스러움일 뿐인 것이다. 이 모두 가증스런 탈을 뒤집어쓰고 자기는 안 그런 체 활보하고 다니지만 흡사 핫바지가 나다닌 것처럼 보일 뿐인 것이다 모두를 싸잡아서 싼 도매금으로 매도한다할게 아니라 사실이 그런걸 사실이 그렇다는 데야 무슨 그에다가 더 토씨를 달게 있겠는가? 이런 나에 말씀이다. 석씨는 말하길 고름 덩어리라 했는데 하인은 금새 터지지 않게 잘지은 똥오줌 가죽자루 자타를 기쁨주고 구제하겠다고 뻐기고 싸돌아 다니는 푸대, 잘들도 놀아난다 할 수밖에.....보인다 할 것이다. 승리를 쟁취 할려면은 귀신을 잘 꼬득임에 있다 할 것이니 조건을 걸어도 크게 걸어여 할 것이며 그렇게 크게 걸어 잘 될 자리를 찾아야 한다할 것이니 무녀들처럼 통돼지에 소머리 놓는 명당을 찾아 야지만 그 은저리 귀신이 모두 와서 흠향하고 용쓰듯 힘을 불끈 실어 준다 할 것이니 조그만치 해갖곤 되려 망신살만 뻗친다할 것이다. *모두들 좋은 운복 생겨나게 해서 앙갚음하고 복수전벌이고 원풀이 한마당 해보자. 용서란 말뜻은 서양귀신들이 사람을 꼬득이는 도구어의로 변질된지 이미 오래요 용서할 것 있다면 그런말 없어도 용서가 될 것이니 저 귀신이 꼬득이는 말로 오른쪽 신발을 준다 하거던 왼쪽 신발 마져 달라 해치워서 그 꼬득이는 선한체 하는 면상의 모습과 같은 구슬림을 발로 싹 문지르듯 문질러주어서 다시도 그런 주둥아리 못 놀리게 해줘야 한다할 것이다. (*즉 적의 반감을 부추겨 사리판단을 재대로 못하도록 흥분으로 몰아넣어 그것이 저들을 잡는 미끼가 되도록 들쑤셔야 한다는 것이다=하인의 집필이 지금 그런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즉 배참한 말을 잔뜩 늘어 놓자이다 감정이 복받치고 오기가 나게끔.) 또 무얼 감언으로 훔쳐갈려 하느냐 이 사탄귀신아- 얼르고 뺨쳐서 나무 밑에 여깽이 처럼 까마귀 물은 먹이를 탈취하려드느냐? 하고선 독 뭍은 먹이 미끼로 물고 있다가 떨어트려 여깽이 쳐먹고 배싸잡아 쥐고 나뒹굴게 해서 보는 이로 하여금 '엣! 고놈 썀통이로구나' 하게 해줘야 한다 할 것이다. .

*사람들은 무슨 일의 성취를 바라는 뜻에서 진인사 대천명이란 成語[성어]를 자주 인용해 쓰는데, 그러나 그런 것은 현시점에선 어리석은 사람의 허황된 바램이요 그런거 있을수 없는 것이니 오직 쟁투에 의한 쟁취만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잠간 이라도 방심치 말고 전투에 임한다는 가짐으로 모든 일에 임해야 한다 할 것이니 오직 누가 머리를 잘 굴려 싸움에 임하느냐에 달렸다 할 것이다 전면에서 전투를 벌일 입장이 못된다면 우회작전을 쓰고 직접적인 타격을 입히질 입장이 못된다면 간접적인 방법으로 대상체를 공격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한 오직 권모술수와 음모가 날뛰듯 해서 술책과 책략이 난무하여서만이 대상을 제압하고 승리를 쟁취하게 된다는 것이다 지금 세상에는 진인사대천명은 敗者[패자]나 웅얼거리는 말이요 盡天事[진천사] 待人命[대인명]이라는 것이니 꾀하긴 하늘이란 게 꾀하고 이룩하긴 사람이 한다는 것이니 증산 선생의 말씀이 하나도 어긋나지 않는다 할 것이다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것, 이를테면 感識[감식]에 의한 견물생심 등=이런 것을 진천사 하늘이 꾀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만약상 정직이 정직이라고 안하무인처럼 활보한다면 부정과 비리가 음모로써 그 다니는 곳에 몰래 깊은 함정을 파고 있다가 풍덩빠지게 한다음 돌우박을 준다면 정직이란 게 어찌 뒈지지 않으랴이다 승리 할렴은 영웅의 권모술수를 쓴다고 오직 승리를 쟁취하는 자만이 모든 자기 行蹟(행적)의 합리성을 부여받게 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든 이겨놓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집단사회에 있어서 어느 분야 던지 그 적용은 마찬가지이니 경제분야나 정치분야나 교육분야나 사회전반에 있어서 오직 남보다 한걸음 앞서 술책을 쓰고 음모를 쓰고해서 공과를 크게 이룩한다면 그 정당성을 부여 받게 되는 것이니 원래 원천적인 정당성이란 것은 없고 힘세기 따라서 정당성이 옮겨가게 되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큰 힘을 갖고 봐야한다는 것이니 소위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쓰고자하는 자만이 이 세상에 자기존재를 주지 시킬수 있다는 것이다. 남 보기엔 안 그런체 보이게 하는 음모가 제일 첫째가는 음모이니 어떠한 무기에도 빠개지지 않는 철가면을 튼튼하게 뒤집어 써야한다는 것이다 음모와 술책이 난무하는 세상만이 큰 발전이 있는 것이지 정직이란 걸 앞세우는 사회는 퇴락만 있을 뿐인 것이다 그러므로 어떻게 하면 저 맛나게 보이는 것을 빼앗을까 를 궁리하고 음모를 써서 탈취할까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자기가 그런 것을 갖고 있다면 내색치 말아야 한다할 것이며 이미 발각된 것은 내 껏이 아니란 생각에 포기할게 만 아니라 그것을 도리혀 미끼화 하여 달겨드는 고기떼를 잡아 족칠 것을 궁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기를 잘 쳐야 하고 속이길 잘해야 한다는 것이니 세상에 거기 허재비 세워 논 줄 알면 참새떼가 되려 비웃고 그 허재비 머리 꼭대기에 올라탈 것 아닌가 이런 내 말씀이니 누가 거기 속이는 그물 있는 줄 알면 가까이 하려 들것인가 이말이다 그래서 종잡히지 않고 들키지 않게 지뢰를 묻어서 발 목아지를 끊어 재키듯 사기와 속임수를 설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 궁국에 가선 저가 법망에 들거나 발각되 비난받거나 하는 것은 眞詐欺(진사기)나 陰謀(음모)가 못된다 할 것이다.) 이것이 다분히 마귀 말씀같으나 곰곰히 생각해봐라 세상 돌아가는 게 그렇게 돌아간다 한다면 그렇게 돌아가는 것으로 보이는 게 사람의 마음일진데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고 만 우길 것인가 이런 내 말씀이다 이것이 세상 돌아감을 斜視的(사시적) 觀察(관찰)角度(각도)로 재어선 싼 도매금으로 매도한다할게 아니라 奸巧(간교)한 術策(술책)과 陰謀(음모)와 黑色(흑색) 책략이 판을 치는데 짙은 赤色(적색)에 다구치는 말은 없을 손가? 이런 나의 생각이다 그저 그 몰이세로 몰아갈 뿐인 것이다. 우리 모두 큰 음모를 써서 승리자가 되자! , 되지 않는다고 앙석만 부릴 게 아니라 음모의 길로 나서서 함정파길 게을리 말 것이다. 곧 천지만물이 다아 먹이체요 회롱감이니 때려잡으러 그 길로 나서라 그러면 성공이 있을 것이다. *음모는 얼마가지 못해 탄로 난다는 말에 겁먹질 말고 또 하찮은 자들의 꼬득이는 말에 속아 정의가 이긴다 하질 말고 그 허물은 어쨀라고....하는 공갈협박에 떨지 말고 일로 매진할 것이니 그렇게 말하는 자들은 음모를 제대로 못써서 사회나 남에게 비난받을 공과만 남게된 자들의 패퇴한 말이니 그에 귀기울일 필요가 없는 것이라 따지고 보면 前現世(전현세)를 들춰 인과 응보를 논하는 것도 모두 無(무)碍(애)한 해탈의 갈구에서 나온 것이니 그 공갈 협박에 넘어갈 하등에 이유가 없는 것이 참 음모를 쓰는 자의 생각이라 할 것이니 辨在(변재)가 잘되면 전현세 현상이라는 것은 渙態(환태)하고 버린 매미 껍질만도 못한 것이라 저 어떤 것을 죽이는 음모를 썻다고 나중에 어떻게 될 것이라는 앙갚음에 저주는 한낫 허공에 공염불이 될 것이니 두려워할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어찌됬던 음모를 잘써 저- 정직이란 미련하고 게걸찬 맷돼지 같은 놈을 때려잡길 노력할 것이다. 그저 마구 함정을 파서 미련한게 빠지거던 돌우박 주길 게을리 말 것이다. *저가 힘세다는 것을 뽐내는 자를 시기하고 질투해서 거꾸로 트리길 게을리 말 것이니 잘난자를 꺼러업고 발로 문질러 주고 당신도 한번 잘난자가 되어 보길 힘쓰라는 것이다 잘 난자가 되었거던 투쟁이 최대한의 방어라고 도전해 오는 자들을 계속 거꾸러트리길 게을리 말 것이며 항상 눈을 화등잔만 하게 켜가지곤 깨어 있으라는 것이다 언제 급습해 올지모름 으로 항상 北方武人[북방무인]이 시퍼런 칼과 권총을 자리 밑에 숨겨 가지고 있다간 적시에 대응하듯 하라는 것이다 (*이말은 철저한 준비 대비책을 강구해 놓고 있으라는 뜻) 누구도 믿지 말 것이니 대략은 그 가까운 자리에 있는 자 들이 배반하고 모반하기 쉬우니 왜냐하면 그 주위 인물들이 언제 밉상 받아 숙청될지 모름으로서 전전긍긍함이라 먼저 선수를 치게 되있는 것이니 측근자를 항시 경계하라는 것이다 사람의 심리가 이해득실에 따라 수시로 변함이라 의리나 지조는 한낫 허구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으므로 그에 지나치게 기댈것 못된다는 것이다 이속으로 남을 부리고 이속으로 남을 꼬득여서 적절히 자기일에 써먹는 것이다 그 지위나 어떠한 영리를 보장하는 것은 부려먹기 위해서니 이속을 저울질해서 유리한데 붙는 것이 사람의 심리인 것이다 대략은 의리를 앞세우는 자들을 보면 무능한자가 많으니, 있던 이속을 여타에게 빼앗길 까바 전전긍긍하는 무능한자들이 그 자리를 탈취당할 까바서 그런 주장을 내세우길 즐긴다 할 것이다. 무능한자들이 옛 功課[공과]를 들먹이며 기존의 권리를 보장받고자 자기발전은 도모할 생각은 않고 평생대추나무에 걸린 鳶[연]이 되길 원하는 것이다. 혹여나 하인에 글을 읽고 반감이 생길자 있어 한마디하겠는데 그런 반감을 고취시키기 위해서도 나에 글은 필요한 것이니 자기 이상을 드날리는 데에도 하인의 글을 이용하라는 것이다 자기의 정당한 주장이 있거던 하인 글을 비판하여 올라서는 듸딤돌로도 이용해보라는 것이다 아무런 가치도 없다하질 말고 휴지조각도 가치부여해서 밋닥게 하던가 코풀던가 넉마로 써먹던가 해서 그 가치 부여 할수 있는 것이므로 일전을 늘려 억만원으로 써볼수도 있는 문제이라 너무 하찮게만 여길 것이 아니라 할 것이다. 아무쪼록 하인의 말씀이 타산지석이라도 됬음 좋겠다는 하인의 바램이다.
*대상체를 쉽게 때려잡을 려면 부추겨서 자만과 교만을 가득 갖게 해놓곤 불의에 습격해서 때려 잡듯 하라는 것이니 항시 이런 점을 지키는 자는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남에 꾀에 지금 역이용 당하지 않는가를 깊이 성찰해보라는 것이다 측근이 아부하면서 '각하 시원 하시겠습니다' 하는 종류의 따위는 이 모두 아부의 무리이므로 그런 자들의 경계를 게을리 말라는 것이다 어떻게든 간교한 술책으로 파고 들어 비밀정보를 캘려 들것이니 만약상 믿지 못한 자이겠거던 두둘겨 패선 반감을 사게끔 해선 거짓 첩보를 제공하면 이런자는 금새 적에게 발고할 것이니 그렇게 써먹으라는 것이다 그러면 그자는 거짓 정보 제공한 덕에 저쪽에서 예형맞아 죽듯 할 것이기 때문에 골치 앞픈 자를 내가 처단치 않고 남에 손을 빌려 처단하게 되므로 내게는 되려 득이 되는수가 있다는 것이다. 즉 비난의 화살이 나에게로 쏟아지지 않게하고 적에게 쏟아지게 한다는 방식이다 또 사나운 호랑이를 때려 잡을려면 그 정신을 산만하게 흩틀어 놔야 한다고 동에 있으면서도 서에 있는 것처럼 속여야 한다는 것이니 적의 뒷켠에 돌팔매가 떨어지게 하여 뒤돌아 가는 사이 나는 그 틈에 실속을 차린다는 것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책략이 수없이도 많으니 권모술수를 잘 써야 득이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저 어떻게든 이겨 놓고 봐야한다는 것이다 승리자는 전쟁의 전리품을 마음대로 요리할 수 있는 권한이 부여되기 때문에 이기는데는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야비한 것도 하나의 전술이요 비겁한 것도 하나의 전법이요 치사한 것 창피스런 것 더러운 것 굴욕적인 것 방탕한 것 동정을 울궈내는 것 갖은 형태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모두 전술에 속한 것이 되기 때문에 이길려면 다아 써먹으라는 것이다 사람에 마음을 동요를 일으킨다던가 안심을 시킨다던가 불안케 한다던가 들뜨게 한다던가등 등 일체 심적인 동요를 조성시키는 것이 심리전에 속하는 것이니 그 마음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진심을 감추고 거짓만 진실인체 무성하게 할 것이니 즉 속여야 된다는 것이니 무조건하고 의심내고 누구던 믿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겉으론 진실성 있는 체 하고 속심의 진실은 보이지 말라는 것이니 결정적인 찬스에 뜨거운 가마솥물 확- 뒤집듯해서 일거에 공격해서 적을 제압하고 승리를 쟁취해야한다는 것이다. 기회를 잃치 말고 지나가는 찬스도 후리치듯 잡아야한다는 것이다. 엘친이 주저했더라면 공산당체제를 그 변혁기에 싸잡아서 무너 트릴수 있었겠는가? 이런 뜻이다 그러므로 세를 잡았거던 파죽지세로 밀고 나가 갈고 치는 일체 모든 것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만 적이 다시 일어설 기회 즉 반격할 기회를 잡지 못한다는 것이니 여유를 주지말고 후들겨 치면 지리멸멸 당해게 되있는 것이 전술 戰機[전기] 것이다 .
*입신 영달을 꾀하거던 그 大意[대의]를 말하건데 슬기로운 도적 지혜 있는 강도가 될 것이다. 슬기로운 도적 지혜있는 강도란? 그 행위에 대한 사회대중의 보편성 원칙에 의거해 인지성향이 합리성이 부여된 것을 말하는 것이니 당위성 으로 보이게 하는 것을 뜻해 누구던 瑕疵[하자]를 잡지 못하게 하는 것에 있는 것이다 눈뜨게 하고 코를 베가도 되려 목까지 안베어 간 것만으로서 다행으로 여겨 감지덕지 하게하는 것이 곧 당위성이 부여된 도둑이라는 것이니 해코지하고도 되려 고맙게 여기게끔 하는 것이 슬기로운 강도가 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때에 그 보살이 허술한 틈을타 몰래 들어오나 소리치듯 들어와 그많은 이속중 일전만 갖고 간 것은 되려 내게 도둑이 아니라 부처 보살이 되는 것이니 만약상 다아 갖고 갔더라면 지금에 무슨 발판으로 오늘에 내가 있었겠는가? 이런 뜻이다. (*물론 어려운 상황으로 내몰리면 빠져나가 더불어 할자 있다고 달리 모색방도가 있을 것이라 하겠지만....) *세상은 다아 이 자기 깊은 내면을 감추고 지혜 갖은 강도가 이끌고 가는 것인지도 모른다 일체의 질서를 지키는 것 같고 공중도덕을 준수하는 것같고 여타의 모범이되는 지도자 유지 같고 훌륭하고 거룩하고 귀감이 될만하고 기리 빛날 것 같고 모든 좋다하는 모습은 다아 뒤집어 쓴 것 같고 나쁘다하는 것은 눈을 씻고 찾아 볼래야 없는 것 같고 군자같고 성현 같고 이모든 것이 속이 응큼하기도 하고 담백 하기도한 지혜있는 강도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세상에 강도가 '나는 강도다' 하곤 이마박에 써붙여 다니는 솔직하다못해 어리석은 강도는 없는 것이다. 강도도 강도 아니라 할 판인데 지혜 있는 강도야 말할 나위랴? 그저 나는 성인군자 입네 안 그런체 허위의 모습을 지어 보이지.....그래서 하인이 이렇게 말해본다 지혜 있는 강도야-! 좀 솔직해보라고, '나는 왕이로소이다' 하질 말고 '나는 세상에 위선에 탈을 쓴 가증스런 죄인이로소이다' 해보란 뜻이다.
*마종 처럼 보이지만 실은 마종이 아니시고 거룩한 선열이 이르길 하인의 눈이 정확하니 하인의 저주가 내린 자는 언젠가는 비참한 종말을 고한다는 것을 알겠도다 하시다. 원수와 결탁해서 그의 괴뢰 종자가되어 그른 것이 오른 것으로 둔갑하게 한데 앞장선 인류의 해적자 이기도하며 좁은 의미로선 민족의 위해자 이며 겨례의 근간터 조국을 등진 무리들은 임시론 저-강하다하는 자들의 앞잡이가 되어 영달을 누릴지모르나 끝내 돌아갈 곳이 없을 것이다 하시다. 하루도 저주의 염원은 끝나지 않나니 그 창피 당하고 그 직위에서 물러나게 되는 것은 모두가 다아 하인의 저주가 내려서 그런 것 인줄만 알라하신다. (*남사로운 짓을 해도 그 남사스러움[창피함]을 모르는 뻔뻔한 자가 참으로 가련한 자라 할 것이다 이반면 취욕을 취욕으로 여기지 않고 성찰해서 자기발전의 轉機[전기]를 삼는 자는 대단한 용기 불굴심 강한자라 하겠다) 어느 누구도 하인의 저주의 올가미에서 벗어날순 없으니 그 보는 눈이 정확하기 때문이다 남을 비평만하는 시기 질투하는 고약한 심상만 가졌다 혹이 할 것이나 그 보는 눈이 정확해서 그렇게 보일뿐이지 기실은 이유 없이 질투하고 시기하지 않는다는 것만 알아 둘 것이다. 근세에 들어와서 근대교육을 받은 지식인 치고 괴뢰 아닌자 없고 매국노 아닌자가 거의 없듯이 입으론 애국을 외치고 다니지만 다아 저 입신의 수단으로 이용하기 위함 뿐이요 시세를 봐서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하는 수치도 모르는 자가된 것이 근세의 신문학 교육을 받은 자들이라 할 것이다 입으론 구슬을 꿰면서도 뒷전에선 갖은 추악상을 다아 보이는 것들이 바로 격동기의 지식인 계층이었던 것이다. 생각해봐라 그 시대에 상인계층이 아니었으면 어찌 신문화 신문물을 제대로 접할 기회가 있었겠는가 이말이다. 상인계층이 무언가 당시의 체제에 불만이 많은 자들과 퇴락한 가문의 사람들과 죽이 맞아 원수의 꼬득임에 넘어가 조국과 민족에게 危害(위해)를 끼친 新思想(신사상) 敎育(교육)을 받아들였다는 자들로써 말인즉 민족을 위한다하지만 외세의 앞잡이가 되어 순박한 동포들을 고통으로 몰아간 자들이 아닌가? 그 대표성을 띈 자들이 바로 xx 무리들인 것이다. 하인의 저주는 한시라도 끝나지 않나니 그 저주의 주술소리가 부처님전에 염불 외우는 듯 해서 염원하고 있음이라 저들의 끝이 제대로 휘감 지을리 만무하고 피폐한 마약 중독장이 심신이 황폐화 해지듯 결국에 가선 망신살이 뻗치고 비참한 몰골 악마상을 드러내게 해선 그삶의 모습이 그러했다는 것을 가증스런 껍데기를 벗겨 보여 진면목을 드러내게 해선 만인 앞에 보여줌인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지켰다면 우리가 이렇게 원수에게 외세에게 굴복 당해서 갖은 험하고 굴욕적인 모습을 당하지 않았으리라는 것을 자숙하면서 여기까지 일장의 글을 맺고 다음기회로 미룰까 한다. 우리가 우리자신을 지키지 못한 게 아니라 원수의 침략수법이 너무도 악랄했다 봐야 할 것이다 즉 기회를 틈탄다는 것이다 즉 갖은 방법을 다아 동원해 조성된 현실여건 최대한도로 이용 침략해 들어 왔으니 사람의 심상에 갈등이 많이 인다는 것을 이용 흐르는물 절벽밑 파고들어 그 우람한 절벽 넘기듯 파고 들은 것이 저들이며 저들의 전략 전술인 것이다 그말하는 것을 들어볼라치면 올치않은 것이 없는 것처럼 들리나 기존의 남에 남새 잘된 밭을 배가 앞퍼 갈아 업고 저회 만청밭을 만들겠다는 수작이니 그 꼬득이는 방법이 고단수라는 것이니 하늘백성 순민의 본성을 가진 동포가 알턱이 있었겠는가? 그냥 당하고 말았던 것이다 생각해봐라 결국에 가선 이가 삭고 心象[심상]이황페화 될 맛있어 보이는 것으로 포장한 금새 표시도 않나고 죽지도 않는 여렀을 물들일 수 있는 독약을 계속 준다면 어찌순한 백성이 속아 넘어가 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저주의 복수 전을 벌일 려면 이보다 더 고차원적인 술책을 갖고 저들을 공략하여야 한다는 것이니 저들이 흐르는 물상으로 공략해 들어 왔다면 우리는 어디든지 유통하는 무형에 공기상으로 저들을 공략해야 한다는 것이니 그 치기를 한시라도 잊지 말라는 것이다. .
*일체 지칭하는 것을 껍질로 여기고 悉知悉見[실지실견] 全知全能[전지전능] 한다고 하여 조종하려드는 것이 모두 사악한 마귀 나니라 겉으론 안 그런체 좋은 명분 달지만 이 모두가 다아 사악한 사탄 마귀종자일뿐이고 그 괴수일 뿐인 것이다 갖은 최고의 권위 스런 지위나 직위를 들고 나오지만 모두가 다이 마귀인 것이니 거기에 허리 굽히거나 꼬득임에 속지 말아야 할 것이다 즉 하늘이란 것 부처란 것 등 어떤 존칭을 달고 나오던간 마귀이니 그에 허리 굽히지 말 것이다 그 조종하려 드는것이 참으로 아니꼽고 더럽지도 않으니-, 그 낮짝에 침을 탁 뱉아 주고 싶지만 참아 그럴수도 없고 해서 참을 뿐이다 또 어디 일정한곳에 그가 있는 것도 아니고 해서 울며 겨자 먹기로 그 하는 행동이 더럽지 만 참을수 밖에 더 있겠는가? 어떻게 범람하여 질책할 방도가 서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껍질이라 한 것은 육신 또는 물질적인 것은 둘째치고 마음이란것 정신이란것 이런 것을 껍질이라 함인 것이니 즉 심신을 파고들어와 어떻게 하게끔 조종하려드는 것을 갖다 마귀사탄이라 해봄인 것이다. 심신을 탈로여기고 씀씀이를 조종하려드는 것과 또 이것이 어떤 뜻이나 생각을 갖고 있는가를 탐지하거나 파악해서 저 실리에 이용하려 드는 것을 악귀찰거머리 같이 떨어지지 않는 마귀 사탄이라 해보는 것이다 원래 존칭을 달만한 하늘이란 것 부처란것 일체지위를 높일만한 것 없지만 이런 것들이 모두 그런 지위나 명분을 달아선 諸象物[제상물]에 心神[심신]이란 것을 저 도구나 수족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모든 이의 심신 심리를 한꺼번에 파악하여 회롱감으로 요리하고 노는 가이다 아주 훤히 드려다 보는 것 같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마귀사탄이라할 수밖에 더 있겠는가? 이것이 석씨 말씀을 비비꼬아서 질책하는 게 아니라 時運[시운]이란 중생의 心 理[심리]를 일제히 파악해서 그운명 흐름에 빈틈이 없게 한다는 것은 하늘같이 여길는지 모를지나 何人[하인]의 눈엔 그 실체가 보이진 않지만 악마처럼 느껴 질뿐이라는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어쩌면 보이는 것 느낄수 있는 것 감정으로 대변해서 저 모습이 이렇다함을 알게 하는지도 모른다 상황을 보고 분노케 하는 것 그것이 곧 그것의 모습이라할 것이다. 왜! 흐름의 전개 상황이 이렇게 밖에 돌아가지 않는가 할적에 사람들은 분노를 느끼게 된다. 야속하다 얄굿다 공교롭다 어쩌면 그렇게 될까?.....할적에 사람들은 그원인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캘려드는 것이다 즉 누구의 작난인가? 아님 그런걸 갖다 능력이라하는 것인가 할적에 왜? 그렇게만 되어야 하는가를 생각하려들게 되는 것이다. 소위 먹은바 뜻대로 안될적에 운명의 작난으로 돌린다 그 운명이란 도대체 뭣이길래 사람의 심신을 이렇게 피곤하게 만드는 것인가 해보는 것이다. 그 귀신이 뒤틀어서 보이길 너에겐 그것이 아니라는 데야 어찌해볼 도리 있겠는가 이런 나의 뜻이다. *모든 일체지칭은 껍질이니 알속은 없다 알속 진리라 하는게 사악한 사탄 악마귀이니 일체 그 능력이란 것을 신봉하지 말 것이니라 석씨 능엄경에 보면 마귀의 능력이 대단히 회롱하는 것을 예를 들어 나열한 것을 잠간 보게되었는데 마귀의 작난이 그것만 아니라 할 것이니 모든感識性向[감식성향]을 허울로 뒤집어쓰고 流動[유동]하는게 일체가 다아 마귀짓이니 저마다 心狀[심상]의 動搖[동요]를 잘 관찰해 볼 것이다. 설령 적멸한 것처럼의 허울을 쓰고도 조종하려 들것이니 동요 없어 마귀 아니라 할 게 아니라 그 적막의 엄습해옴의 상을 가만히 관찰해 볼 것 같으면 그 또한 마상이 아니라곤 못할 것이니 마로 볼진데 모두가 다아 마로 보이는 것이니 이를 갖다 한켠으로 꿰뚫듯 달관한 것처럼 (*假飾象[가식상]이)느껴진다는 것이다.
*허줍스런 탈을 쓴 부처가 중생을 제도하겠다고 중생한테서 선심에 마음이란걸 울궈 짜내 듯 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뭘할라고? 쓰잘데 없이 중생에 속하는 사람들에 마음만 고달게 할 뿐이로다. 그 신이 나듯 남을 돕는 입장에 선걸 자랑이라도 하듯 내어끌고 덤벙거리게 하나 하나도 신날게 없는 것인데 신나게 활동하는가?.... 너- 기분 좋으라고 저 부처가 저탈을 쓰고 가련한 모습을 짓고 있느냐? 아님 마귀의 원 들어 주랴고 저- 부처가 저런 탈을 뒤집어 쓰고 동정에 마음을 갈구 케 하느냐? 서글픈 모습을 자아내는 것은 내 눈앞에선 썩 꺼져라이다. 가증스런 魔鬼[마귀]가 善[선]한체 善[선]으로 중생을 이끌겠다고 그런 모습을 지어 보이는 것이다. *억만 무량 환태 각성 체는 즐거움만 눈에 띄게 할 뿐이다. 그 즐거움을 고취 시키기 위해 깊은 맛이 돌게 하기 위해 씀바귀 맛을 먼저 보게 한다는 마귀의 변재 주둥아리를 주먹으로 한대 콱 쥐어박아서 입을 앞으로 쭋 내밀어 부풀어 물게끔 해선 말도 제대로 못해 얼버무리게 해줘야할 것이니 '어구~내주둥이야' 하게 시리 말이다.
*空[공]이 둘로된 하나의 空空[공공]을 갖다 百[백]이라하는데 어떻게 이루어져 백이라 하는가? 즉 시간적인 六合空[육합공]과 空間的[시간적]인 八等分空[팔등분]이 각각 升[승]곱하면 삼십육과 육십사가되는데 이것은 각각無碍[무애]함을 뜻함이라 합하면 백수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이 둘로된 하나의 공공이라하는 것이다. 즉 우주는 이 시공 합성에 의해 있는 것이다.
*석존이 가섭에게 연꽃을 들어 보임에 가섭이 미소를 지은 이유는?....선존이 연꽃을 들어 묻길 언덕해서 기댈만한 것이 넓브러지고 흐드러질 정도로 되었느냐? [즉 활짝핀 연꽃처럼 되었느냐?= 阿羅漢?]함에 가섭이 미소로 대답하길 아직 그 정도는 아니고 피지않은 꽃봉오리 정도[미소정도]입니다 했다. *作[작]은 反[반]을 항상 겸해 갖고 있는 모습 '웃기네- 너만 잘난체 하지말아'이다 즉 당신 물어옴이 가소롭도다 당신만 위대 한체 하지 말라는 것이다. 아무러크소니 글에선 제로(0)란 의미로 이와 좀 달리 해석되어 있다 할 것이다.
* 觀(관)에 있는 것이니 衆生(중생)觀(관) 이면 중생이고, 부처觀(관) 이면 부처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어느 위치로 할 것 인가가 관건인데 중생 관을 갖게 된다면 스스로가 부처이기를 부정하는 것이라 스스로가 부처인데 중생관으로 전락시키는 것이요 부처 관을 갖게된다면 아직 未達(미달)속에 허덕이는 여러 가지가 모두 해탈되어선 일거에 부처가 되는 것이라 모름지기 부처觀(관)을 갖기를 바랄 뿐이다 부처가 되면 입고 당한다는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가 되면 일체것이 벗긴 것이 되고 수용한 것이되고 성취한 것이된다 衆生(중생)觀(관)으론 고해 늪에서 번뇌 고통하는 것이 되지만 , 부처관이 되면 升化(승화) 관점이 성립됨인지라 아라한의 꽃이 만개한 것으로 된다 이를테면 긍정과 부정 차이다 마음이 달가우냐 쓰거우냐 의 차이다 능동적이냐 피동적이냐의 차이다 이래되면 구분짓는 마음이라 하는데 구분 짓지지 않는데로 나아가기 위해선 구분지어 나열해 보이는 것은 하나의 방편일 뿐이다 그대가 달가운 마음 능동적 행동이라면 태산을 걸머지고 바늘 까시나 용광로 속에 들어 있어도 부처가 된다 피동적 쓰거운 마음 저항 거부반응이 인다면 꿀과 향락음률이라도 고뇌하는 중생이 될 것이다 소이 모든 게 마음자리에 있다는 것이다 마음은 유동치는 것 우주를 수레로 삼아선 횡횡천하 하는 것이라 걸릴게 없으니 本無自性(본무자성)이요 머무른바 없으니 시간성향으로 얻지 못하는 것이라 우주를 수용하여선 꽃피워 보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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